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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ug 03. 2023

달의 잔소리

0417

유월 보름이 이틀이나 지난 오늘 새벽 4시의 하늘에도 둥그런 달이 두둥실 떠 있다.

초승달이나 반달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면서 보름달은 한참을 바라본다.

뽀얗고 둥그런 모습은 조선백자 달항아리 같다.

절제되고 담박함이 있다.

담박淡泊
욕심이 없고 순박하다

첨단의 시대에도 어김없이 달이 뜨는 건 물질만능으로 달려가는 걸음을 잠시 멈추어보라고 옆구리 찌르는 것이다.

욕심을 없애는 것만이 현실에 대한 적극적 대안은 아니겠으나 욕심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나를 새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유의미한 일일게다.

순박함이 어리숙함으로 둔갑하여 요령부득의 인간이 될 수도 있겠지만 본연의 모습을 돌아봄은 왕왕 괴물로 변하려는 나를 고쳐 잡아줄 것은 분명하다.

보름달이 이토록 완벽하지 않았다면 달의 잔소리가 귓등에서만 맴돌았을 것이다.

도도한 자태는 달의 언어들을 거부감 없이 수용하게 한다.

달이 풀어놓는 메시지는 한결같으면서 진부하지 않고 설득력이 있다.

섣불리 다그치지 않고 기다리며 부드럽게 압박한다.

제대로 따져 묻지도 못하고 달의 주문을 수용하게 만든다.

달의 재주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 뼘 더 나아간다.

불목의 상대를 내 안에서 기어이 대면하게 한다.

쭈뼛거리는 내 손을 억지로 잡아채 상대에게 내밀게 한다. 

인간이 그러했다면 그와 먼저 절교했으리라.

달의 억지는 인간의 그것과 달라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다.

달의 제안은 계산이 없고 뒤끝이 없어서다.

이번 보름에도 달에게 이끌려 무려 세 명이나 내 마음에서 용서를 해버렸다.

조금 억울했지만 잠시였고 이내 홀가분해졌다.

그러고 나서 보름달을 올려다보니 더 둥그렇게 떠 있다. 그건 잘했다는 만족을 내게 표시한 것이다.

조금씩 자리를 옮기며 달이 빛나는 건 나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에게 이와 같이 잔소리를 하고 다니느라 그런 것이니 만나면 각오해야 한다.

달이 그래도 인간의 부끄러움을 염려해 밤에 이러고 다니는 걸 알아줘야 달도 서운함이 덜할 게다.

태양보다 속 깊은 달이 우리 곁에 있으니 그나마 살만한 삶이다.

혹시 태고부터 달이 해 온 아름다운 임무를 몰라보고 달의 자태를 사진에 담기만 한다면 달을 두 번 죽이는 꼴이 된다.

팔월은 운좋게도 보름달이 두 번 뜬다.

음력칠월보름달을 이달 30일에 만날 때에는 카메라는 내려놓고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어떨까.

달이 그동안 묵혀둔 잔소리가 얼마나 나를 새롭게 하는지 실감하게 될 것이다.

달아!

늘 고마워.

그나마 다행인 건 너에게 멱살을 잡을 팔과 엉덩이를 걷어찰 다리가 없다는 거.

추석대보름때에는 김으로 오려 만든 나비넥타이를 달아줄게. 맘에 들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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