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저는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명작의 반열에 드는 동화나 소설을 읽는 데에 그다지 큰 어려움이 없이 술술 잘 읽다가도 유독 노벨문학상 수상작 어쩌고 저쩌고 하면 마치 뭔가에 된통 얻어걸린 듯 읽을 때마다 곤욕을 치르던 기억이 납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저의 무지가 일차적인 원인이겠습니다.
어쨌건 간에 그런 수상작들은 어쩐 일인지 저와는 그다지 인연이 없었던 듯합니다. 마치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어떤 소설가의 소설을 읽었는데, 가령 제게는 너무 어려워 도무지 뭘 읽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스토리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고, 긴 시간에 걸쳐 읽게 되면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다가 손에서 놓고, 다시 조금 있다가 그 부분을 또 읽어야 다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에 사로잡힌다는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완독 후 말미에 수록된 작품 해설을 읽고는 머리를 쥐어뜯게 됩니다.
글쎄요, 이렇게 말해도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 나름으로 유치한 수준이나마 소설을 쓰면서 혹은 기성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반드시 모든 소설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주옥같은 소설이 또 다른 이에게는 졸작이 될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졸작이라고 평하는 작품이 때로는 제 인생 최고의 소설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무슨 서두가 이렇게 기냐고요? 얼마 전 소설가 한강 씨의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지금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한강 신드롬에 빠져 있습니다. 충분히 그럴 만합니다. 그게 어디 보통 일이겠습니까?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노벨문학상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성과를 이룬 자체만으로도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대대적인 사건 아닌 사건의 영향인지 소설가 한강 씨의 작품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고, 이미 공공도서관에서는 죄다 대출을 해서 대기자 명단에도 올릴 수 없는 지경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뭐, 좋습니다. 결코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일입니다. 평소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나마 이참에라도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져준다면 책을 좋아하고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만한 절호의 기회가 또 어디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그래 봤자 이 열풍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조심스럽게 짐작해 보자면 해외에서의 열풍보다 먼저 사그라들지 않겠나 싶긴 한데, 어쨌거나 지금의 모습은 충분히 고무적이고 반가운 일이기 그지없는 것입니다.
때마침 제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 도서관에 갔더니 소설가 한강 씨의 작품이 한 권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업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두고 곰곰이 생각에 빠졌습니다. 과연 제가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는 일전에 소설가 한강 씨의 작품 몇 권을 몇 번이나 읽다가 끝까지 읽지 못하고 도중에 손에서 내려놓았던 적이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그녀의 작품을 소화할 만한 문학적인 식견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쳇말로 그냥 쿨하게 인정하면 되는 것입니다. 소설가 한강 씨의 작품을 아직 읽을 깜냥이 안 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저의 현실을 제가 인정하기 싫었나 봅니다. 무턱대고 이번에 또 도서관에서 빌려왔으니 말입니다.
소설가 한강 씨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대단한 경사인 건 틀림없으나, 저는 이참에 또 한 번 마음을 다져 보려 합니다. 그 작품들을 굳이 제가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입니다. 최소한 지금 제가 그 책을 읽어서 소화할 수 없다면, 어쩌면 그 책은 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읽는다고 해서 기어이 저까지 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저는 이 열풍이 조금 가라앉기 전까지는 읽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또 그녀의 작품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는 미뤄 두려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