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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15. 2024

비가 그치고 나니

263일 차.

어느덧 비가 그쳤습니다. 기온도 약간 떨어진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시원한 게 아니라 춥다는 말도 할 수 있을 듯합니다. 무엇보다도 어제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약간의 울긋불긋한 빛깔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얼마 전부터 그랬었는데, 제가 눈치를 채지 못했던 것일까요? 마치 한동안 못 보다 오랜만에 보니 뭔가 변화가 느껴지듯 그렇게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하루 이틀 사이로 불쑥 가을이 더 깊이 다가온 게 아닐 텐데 말입니다.


아이들이 체육 수업을 하러 간 사이 1/3쯤 열린 창문으로 밖을 내다봅니다. 왁자지껄한 운동장이 내려다 보입니다. 운동장 가장자리 쪽, 그러니까 트랙으로 봤을 때 긴 직선 쪽에 놓여 있는 등받이 없는 벤치 다섯 개가 보입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운동장으로 달려 나가 저 그림 속의 한 장면인 듯 보이는 벤치에 털썩 앉아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가을의 한가운데로 몸을 던져 보고 싶습니다.


몇 미터의 간격을 두고 놓인 벤치들 사이로 사람 키보다 약간 큰 나무가 몇 그루 서 있습니다. 이미 다 자란 건지 더 자랄 게 있는지 알 수 없는 그 작은 나무는 제법 발그스레한 빛을 띠고 있습니다. 저 작은 나무에도 가을이 왔다는 것이겠습니다. 언제 저렇게 가을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일까요?


그새 수업이 끝났습니다. 저마다 학원 가기 바쁜 아이들은 예외 없이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이들이 떠나고 없는 학교는 온통 적막강산일 뿐입니다. 역시 학교라는 곳은 주인공인 아이들이 있어야 생기가 도는 법입니다. 귀가 사나울 정도로 소란스러워도 아이들이 없으면 학교가 아닌 것입니다.


뭘 그리 할 말이 많은지 하루종일 입을 쉬지 않는 아이들입니다. 했던 말을 또 하고, 그 말을 다시 또 다른 아이에게 전합니다. 소란에 소란이 더해져 학교는 온종일 시장 바닥 같습니다. 심지어 수업 시간 중에도 그들의 활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정겹기만 합니다.


생각은 그렇게 해도 아이들의 소란을 잠재워야 할 때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떠들게 내버려 두면 안전사고가 일어날 우려가 있으니까요. 적절하게 단속을 해야 합니다. 어떤 때에는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려고 학교를 다니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게 할 일이니까요.


조용한 교실에 혼자 앉아 있습니다. 한참 전부터 틀어 놓은 음악 소리만 무심히 들려옵니다. 바로 옆 교실에도, 문 하나가 가로막고 선 복도에서도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저물어간다는 신호입니다.


어느새 몸은 집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 있습니다. 피로에 찌든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띕니다. 그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냈다는 뜻이겠습니다. 치열한 하루의 끝에 아침에 보았던 풍광이라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기차 차창 너머로 온통 어둠뿐입니다. 그래도 아침의 그 선명한 기억이 있어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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