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되기 전에 제가 사는 곳에도 첫눈이 왔습니다. 사실 눈이라고 거론할 것까진 없는 정도였습니다. 내리는 즉시 다 녹아 없어지고 말았으니까요. 하늘엔 눈이 펄펄 날리고 있었지만, 땅에는 흔적도 없는 그런 눈이었습니다. 그래도 그것도 눈이랍시고 사람들의 들뜬 표정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 역시 기분이 그리 나쁘진 않았고요.
우린 왜 이렇게 눈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심지어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눈이 오면 화이트 크리스마스 어쩌고 저쩌고 하며 괜스레 설레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어쩌면 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명절 중의 하나인 크리스마스에 우리까지 덩달아 마음이 설레고 뭔가를 꼭 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젖어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다면 최소한 선물 정도는 주어야 할 것 같고, 이상하게 우리는 그때쯤 서로 헤어질 때 뜬금없이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덕담까지 건네고 있는 형편입니다.
사실 눈은 어린 아이나 강아지가 더 좋아합니다. 이제는 어쩌면 낭만을 찾기엔 너무 늦은 나이가 되어 버렸고, 순백색의 그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지난날을 성실하게 살아오지 못한 그 허물이 낱낱이 드러나는 것 같아 사뭇 부끄러운 마음마저 들기도 합니다. 게다가 운전을 하던 때에는 그렇게 느닷없이 날리는 눈발이반갑지도 않았고요. 다소 이기적으로 얘기하자면 아마 이렇게 될 듯합니다. 거실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들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마주친 눈이 더없이 낭만적이더라,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은 까닭 없이 우리를 들뜨게 합니다. 글쎄요, 갑자기 비가 오면 여기저기에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바삐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을 본 적은 있지만, 눈이 온다고 해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욕을 하는 사람을 본 기억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눈이라는 건 우리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리는 하얀 눈을 보면 강렬히 누군가가 떠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더군요. 사랑하지만 지금 현재 같이 있지 않아서 떠오르는 경우도 있을 테고, 어떤 일로 소원해진 관계를 이참에 회복했으면 하는 사람도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작년에 블로그 이웃 중 한 분이 제게 보내준 시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지하철 역 승강장 도어에 있던 시라고 했습니다. 마침 그 시에서도 눈과 사람을 연결 지어 표현하고 있어서 여기에 한 번 옮겨 보겠습니다.
소식 作. 한수남
눈이 오면 눈이 온다고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꽃이 피면 꽃이 핀다고
나는 너에게 제일 먼저 말해주고 싶다
이 시를 떠올려 보니 모든 게 명확해졌습니다. 한편으로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눈이 오던 그날 제가 제일 먼저 연락한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말입니다. 아직도 마음 한편에 말랑말랑한 뭔가가남아 있다는 게 믿기진 않았지만, 저 역시 내리는 눈을 보며 누군가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제 기억이 맞다면 짤막한 메시지 정도는 남겼던 듯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눈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눈을 보며 떠오르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얘기가 되는 것일까요? 다시 하늘에서 머리와 손바닥위로 눈이 떨어질 어느 날, 제가 내딛는 길 위에 눈이 흩날릴 때 눈 내리는 풍경을 찍은 사진과 함께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게 될 그 누군가를 생각하며 눈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