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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Sep 26. 2023

저는 관종입니다.

어쩌면 이때가 가장 아름다울 때

예전에 저의 목표는 단연코 등단이었습니다. 주제도 모르고 까분 건 사실이지만, 몇 년 동안 그 기조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게 상금이 얼마가 되었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큰 목표라면 제가 좋아하는 글쓰기에서 어떤 성과를 내겠다며 다짐하고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으로는 만날 글 쓴답시고 머리를 쥐어뜯는 모습만 보여준 가족들에겐 직업 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기세가 한풀 꺾인 건, 꽤 오래전에 작은 어느 공모전에서 제 작품이 최종심에 올라 당당히 신문지면에 제 이름 석 자와 심사평이  실리고 난 뒤부터입니다. 대개는 최종심에 오르고 나면, '아,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되겠구나'하는 마음을 갖게 마련이라는데, 제겐 오히려 그때 그 일이 저를 더욱 겸손(?)해지게 만든 일이 되었습니다.


우선은 그해에 몇 군데의 신문사에 보냈던 원고들 중에서 최종심에 올랐었던 그 원고를 제가 가장 하찮게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이 글 같지도 않은 걸 보낼까 말까를 몇 번이나 고민하다 쓴 김에 보내자 싶었던 것인데 그런 일이 벌어지고 만 것입니다. 문제의 그 원고가 최종심에 올랐던 반면 제가 잔뜩 기대했던 것들은 여지없이 떨어졌습니다. 그때 전 전문가의 식견과 저의 것이 확실히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이후 아무리 노력해도 간극을 메울 자신이 없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최종심에 오른 세 편의 작품 중에서 저와 다른 한 분의 작품을 밀어내고 당선의 영광을 안은 그분의 작품을 읽었을 때 느낀 당혹감과 혼란 때문이었습니다. 잘 쓴 건 충분히 알겠는데, 저의 글과 그리고 나머지 한 분의 글과 어떤 차이점이 있다는 것인지, 그래서 어떤 면에서 더 나아 당선이 된 건지를 도무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때부터 전 솔직히 마음을 비우기 시작했습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도를 닦는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은 이 정도 경지(?)에는 오른 듯합니다. 더는 글을 쓰면서 안달복달하지 않습니다. 쓰는 데 희열을 느끼며 무엇이든 씁니다. 그게 수필이 되었든, 소설이 되었든 가리지 않습니다. 마감이라고 독촉하는 이가 있을 리 없습니다. 조금 못 썼다고 해서 눈치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제가 쓴 글을 그저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낙으로 글을 쓰곤 합니다.

네, 맞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은, 그리고 글쓰기에 있어서 만큼은 저는 관종입니다.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관종이 되면 어떤가, 하고 말입니다. 제가 매일 글을 쓸 수 있고, 그렇게 쓴 글을 공유하며, 소수의 분들이라도 제 글을 읽고 지금처럼 공감해 준다면 관종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처지가 되어도 저는 기쁠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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