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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Nov 08. 2023

새벽의 기운

백 예순네 번째 글: 아침이든 새벽이든.

보통 24시로 환산했을 때 06시 이전을 새벽이라고 하고, 06시 이후를 아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글을 쓰기 시작한 06시 18분은 엄연히 새벽이 아니라 아침입니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일종의 사전적 정의입니다. 그런 사전적 정의 말고 우리에게는 피부로 더 와닿는 표현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심정적 정의라고 부른다면 우린 살아가면서 이 심정적 정의에 의존하게 될 때가 더 많습니다. 가령 이런 것입니다. 06시 18분은 시간적 경계상 아침에 속하지만, 해가 짧은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은 아무리 봐도 새벽이라는 것입니다. 고작 19분 차이로 명백히 아침이라고 몰아세우기엔 무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아직은 밝음보다 어두움이 더 짙습니다. 길을 다니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지하철 안은 사람이 많은데 그들이 죄다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주변은 한산합니다. 마치 아직은 세상 모든 것이 잠에서 덜 깬 기분입니다. 선잠에 취한 망령들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동안 아침이 밝아옵니다.


플랫폼에 서서 오른쪽 끝과 왼쪽 끝을 주시합니다. 오른쪽은 곧 있으면 기차가 들어올 공간이고, 왼쪽은 그 기차에 올라탄 제가 밝음과 어두움이 뒤섞인 저 미지의 공간을 가르며 나아가는 곳입니다. 늘 다니는 곳이지만, 분명 제겐 미지의 공간입니다. 기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 보기만 했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두 발로 밟아본 적이 없는 곳입니다. 걸어서 가지 못했던 그곳은 적어도 제겐 미지의 공간입니다. 삶이란 어쩌면 그런 미지의 공간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목적지까지 절반 정도를 남겨두었을 즈음 사위가 완벽하게 밝았습니다. 티끌만큼의 어두움도 이젠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선명해지니 온전히 아침입니다. 그래서 아침은 늘 설렘을 가져다 줍니다.  선명함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또 한 번 제게 온 하루를 살아낼 겁니다. 늘 희망과 즐거움만 가득할 순 없어도 행복한 아침을 맞이하길 빌어봅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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