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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Dec 03. 2023

밤 그리고 맘

백 여든다섯 번째 글: 밤은 사람의 마음을 약하게 합니다.

우리 몸에는 여러 가지 호르몬이 있을 겁니다. 신체의 기능을 조절하는 데 관여하는 것들이 있을 테고, 더러는 순전히 사람의 기분을 형성하는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과학적인 원리에 대해선 저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다만 밤이 되면 유독 사람의 마음이 약해진다는 것과 여기에는 아마도 모종의 호르몬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호르몬의 이름이 뭐냐 하는 건 조금도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그걸 안다고 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해가 지면 일찍 귀가하라는 건 꽤 현명한 판단인지도 모릅니다. 으레 밤이 되면 판단력이 마비되거나 마음이 오락가락해지기 쉽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은 일탈을 저지르기 쉽고, 날이 새면 밤에 내린 결정에 대해 후회하는 일도 생기곤 합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당장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오늘은 별 이유 없이 집 앞에 있는 파스쿠찌에 나왔습니다. 글을 쓰겠다는 마음 없이 나왔으니 오늘은 노트북도 안 가져왔습니다. 그냥 바닐라 라떼 한 잔을 주문하고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음료가 나오기 전까지 무슨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그러던 중 음료가 나왔다는 점원의 콜 사인을 듣자마자 생각이 끊어졌습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더니 조금 전까지의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또 다른 생각이 머리를 비집고 올라오려 합니다.


도저히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스마트폰을 펼쳐 무작정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집에서 나설 때만 해도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말입니다.

소재를 생각해 놓았을 리가 없습니다. 글의 제목은 물론이고 어떤 내용에 대해 쓸 건지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럴 때 제일 무난하게 쓸 수 있는 소재는 제 마음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마음 같아선 밤이 되면 왜 사람의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지 따위에 대해 써보고 싶지만, 그러기엔 글의 스케일이 너무 커질 것 같아 접습니다.


마음이 약하다는 건 흠이 되지 않습니다. 또 약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 또한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약한 마음 때문에 늘 감상에 젖어 자신을 방치한다면 그건 꽤 심각한 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건 쓸데없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쓰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수께끼입니다. 왜 사람은 밤만 되면 마음이 약해질까요?


사진 출처: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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