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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Dec 21. 2023

저녁의 소회

이백 여섯 번째 글: 오늘 하루도 잘 보내야겠습니다.

어제 학년말 업무를 하느라 퇴근이 늦었습니다. 저녁 8시가 넘어서야 가까스로 학교를 나왔습니다. 많이 추웠습니다. 길도 약간은 얼어붙은 듯하고, 늦게 집으로 향하는 제 발길도 얼어버릴 것 같았습니다.


폰으로 검색해 보니 20분은 있어야 버스가 온다고 뜹니다. 너무 이르게 나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딱 맞춰 나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버스운행정보시스템에 따라 표기되는 것이라고 해도, 제가 타는 버스는 엄밀히 말하자면 마을버스에 가깝기 때문에 시스템 상의 안내와 실제 운행 상황이 맞아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버스가 오려면 20분이나 남았지만, 일단은 학교를 나왔습니다. 그 시간 동안 버스정류장에 서서 기다릴 자신이 없었습니다. 여차하면 뛰겠다는 각오로 언덕을 올라올 버스가 보이는 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따뜻한 캔커피를 하나 샀습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막상 따서 마시는 것보다 손에 들고 있을 때가 훨씬 더 따뜻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어제 저녁은 버스운행정보가 일치했습니다. 도착 시각 3분 정도를 남겨 놓고 편의점을 나섰습니다. 정류장으로 가기 직전 문득 하늘을 봤습니다. 어두컴컴한 하늘, 간간이 불빛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는 풍광을 폰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저녁의 소회라고나 할까? 그 짧은 시간 동안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려니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그럴 리 없는 하늘이 제게 물었습니다. 하루 잘 보냈냐고, 만족할 만큼 의미 있게 시간을 알차게 썼냐고 말입니다. 늘 같은 패턴입니다. 아침이면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머릿속에 그려보고, 저녁이면 아침의 다짐대로 잘 살았는지를 되돌아보곤 합니다. 사실 예외란 있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예외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건 오늘 저녁에도 같은 행동을 되풀이할 거라는 사실입니다. 과연 오늘 저녁엔 어떤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게 될까요?


사진 출처: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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