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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꾸 뭘 까먹곤 한다. 한동안 그런 적이 없었는데, 최근까지만 해도 해야 할 일을 비교적 잘 기억했는데 요즘 좀 심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내 역시 최근 들어 건망증이 심해졌다고 투덜대기도 한다. 아내는 이제 늙어가는가 보다,라고 하지만, 50대 초반인 우리가 아직은 늙었다는 표현을 쓰기엔 좀 그런 것 같다. 그저 단순 건망증일 거라고 말했다. 조금만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으면 얼마든지 이런 낭패를 줄일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큰소리쳤던 내가 어제 건망증 때문에 황당했던 적이 있었다. 매일 일기를 쓰겠다고 그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자신과 약속해 놓고도 그걸 까먹고는 태무심하게 잠이 들어 버렸다. 따지고 보면 어제 잊지 못할 만큼의 좋은 일도 있었고, 그럭저럭 해야 할 하루의 일과는 모두 소화한 터라 편안하게 잠이 들 만한 상황이긴 했다.
사실 어제는 내게 슬럼프 같은 멘털의 흔들림이 있는 날이었다. 좀처럼 내게는 찾아오지 않던 '글쓰기 싫은 날'이 바로 어제였던 것 같기 때문이다. 보통 때 같으면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에 오르자마자 휴대폰부터 펼쳐 든다. 학교에 들어오기까지의 대략 2시간 여 동안 2~3편 정도의 글을 쓰곤 했는데, 어젠 좌석에 앉자마자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아! 오늘 글 쓰기 참 싫다!
아침부터 든 그 기분은 오후 늦게까지 이어졌다. 나름 글을 써 보려 몇 줄을 끼적이다가 이내 포기했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 무리해서 강행하다 보면 안 쓰느니만 못한 글이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거의 저녁이 다 되어 갈 무렵, 제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한 편씩 한 편씩 글을 썼다. 어쨌거나 블로그에서의 매일 글쓰기도 어제 해냈고, 썩 마음에 들진 않아도 이곳에서 네 편의 글도 썼다.
어제의 일기를 오늘 쓰면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정신을 조금은 더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망증은 정신의 조절로 얼마든지 극복이 될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