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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an 09. 2024

눈이 내리네.

044.

2024년 1월 9일 화요일, 흐림


잠시 쓰레기를 버리러 아파트 마당에 내려갔다가 깜짝 놀랐다. 눈이 올 거라는 얘기도 들었고, 잠시 산책을 나갔던 아내로부터 눈 내린다는 말도 듣긴 했지만, 이만큼 많이 온 줄은 몰랐다. 물론 정말 많이 온 지역에 비하면 이 정도의 눈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다만 이곳이 연중 비나 눈이 거의 오지 않는 대구 지역인 걸 감안한다면 그리 적은 눈은 아니지 않겠나 싶었다. 지나가는 차량의 타이어 자국이 선명하게 찍혔고, 아파트 앞마당을 걷는 동안 내 발자국도 또렷한 자취를 남겼다.


이런 날이면 낭만적이기 십상이고, 노래가 제격인 것 같아 혼자서 앞마당을 거닐며 몇 곡의 노래를 불렀다. 누군가가 들었다면 야밤에 청승 떤다고 욕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인 것은 안에 사람이 탄 차량은 더러 지나갔어도 보행 중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해운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눈이 오는 장면을 카메라 동영상으로 찍으면서 노래를 불렀다. 뭐, 뮤직비디오가 따로 있나? 영상이 나오면서 노래를 부르면 그게 바로 뮤직비디오 아닌가?


그런데 낭만적이다 싶은 그 마음이 오래가지 않았다.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또 출근해야 한다. 보아하니 대책 없이 쌓일 만한 그런 눈은 아니라고 해도 이 상태로 몇 시간만 더 내린다면 길에 바짝 얼어붙기 딱 좋을 만한 눈이었다. 이미 어린아이의 동심을 잃어버린 지 오래인 나는, 눈을 보면 아주 잠시만 좋았다가 덜컥 겁이 나곤 한다. 어떻게 도보로 이동을 해야 할지, 출근하는 동안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집에도 못 오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때 꽤 오래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평소 45분이면 집으로 올 수 있었던 한 학교에 근무했던 적이 있었다. 딱 하루 눈이 푸지게 왔다. 그때도 대중교통으로 통근을 할 때였는데,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동료선생님 차를 타고 집까지 온 적이 있었다. 무려 6시 15분이 걸렸다.


설마 그때처럼 오는 건 아니겠지, 하면서도 슬슬 마음이 불안해진다. 어쩌면 지극히 이기적인 바람이란 걸 모르는 것은 아니나, 가능하다면 밤 사이에는 더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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