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9.
갑자기 당신 목소리가 듣고 싶습니다.
망설일 이유는 없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휴대폰의 전화번호부를 열어 누르기만 하면 될 테지만,
쉽사리 실행에 옮길 수 없습니다.
명분이 필요하니까요.
왜 그런 것 있지 않나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의 당혹감 말입니다.
꽤 그럴싸한 구실이 필요한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렇다 할 만한 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입맛만 다신 채 휴대폰을 닫습니다.
30초도 안 되어 다시 휴대폰을 꺼내 듭니다.
그냥 무작정 걸어서 받으면
잘못 걸었다고 말하며 끊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들을 나누고는
안부 차 전화했다고 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든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당신을 내 마음에 담아두거나 그리워하는 건 이유가 필요 없어도
전화를 걸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당신 모습이 난 더 좋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당신의 목소리가 감미롭지 않아도,
조금은 들뜬 목소리라도 난 그 목소리에 마음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지금 난 당신에게 전화를 걸려 합니다.
난데없이 내게서 전화가 걸려와도
당신이 놀라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