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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Feb 07. 2024

직원 송별회

이백 쉰아홉 번째 글: 가는 사람

오늘 직원 송별회 자리가 열렸습니다. 열한 명의 동료 선생님들이 타학교로 전출을 가고, 열일곱 명의 선생님들이 전입해 오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이 자리가 열한 명을 위한 자리라면, 차후 3월 초엔 열일곱 명을 위한 자리도 마련될 것입니다. 으레 그렇듯 이런 자리는 일 년 중 가장 부담이 없는 상태에서 모이게 되어 다른 어떤 회식날보다도 부산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잠시도 대화 소리가 그치질 않습니다. 심지어 중앙에서 모임과 관련된 얘기를 해도 집중해서 듣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입니다.


친목회장의 개회 선언에 이어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있은 뒤 본교를 떠나는 사람들의 인사 순서가 돌아옵니다. 식탁에는 이미 많은 음식이 차려져 있고, 그 음식이 조리되는 과정에서 온갖 소음이 난무합니다. 그런 가운데 인사말을 한다는 건, 하는 사람에게도 듣는 사람에게도 꽤 고역입니다. 저도 몇 차례 학교를 옮기는 동안 그때마다 참석하곤 했지만, 근무하는 학교는 달라도 어디나 그 풍경은 같습니다. 24년째 봐 오고 있는데도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는 여전히 쉽게 적응이 되질 않습니다.


저렇게 시끄러운데 무슨 말이 들리겠냐며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어딜 가도 변화가 없습니다. 물론 말하는 사람도 생각만 달리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어차피 제대로 듣는 사람도 없으니 요식적인 의미로서 인사만 하면 됩니다. 또 2년 후면 제가 저 자리에 서서 듣지도 않는 인사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서글퍼지기까지 합니다.


다른 날은 몰라도 오늘 같은 날은 평소 회식 때보다 시간이 꽤 흘러도 먼저 자리를 뜨는 사람이 없습니다. 바쁜 일 때문에 여기저기 눈치를 보다 야반도주하듯 몰래 발소리를 죽인 채 나가는 사람도 없습니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언제까지고 앉아 수다를 떨어댈 기세입니다.


길고 긴 식사 자리를 파한다는 친목회장의 말이 있고 나니 그제야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심적인 부담감이 없던 자리라 의미 있던 자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진 출처: http://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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