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치고써 Feb 09. 2024

제사 없는 세상

2024년 2월 9일 금요일, 흐림


세상에 둘도 없는 불효자라며 손가락질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난 이미 내 아들과 딸에게 선포했다. 나중에 우리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말이다. 물론 지금 세대 자체가 제사를 지내달라고 부탁해도 들을지 말지 알 수 없을 그런 세대인 건 맞다. 어쨌거나 내 생각은 그렇다. 조상을 잘 모셔야 내가 잘 되고 자식이 잘 된다는 풍문을 한낱 미신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해도 조상에 대한 제사에 있어 큰 의무감은 없다.


돌아가신 부모님 제사도 실은 3년 정도가 지난 뒤에 그만 지내고 싶었다. 그런데 아내가 반대를 했다. 그렇게도 싫어하고 혐오했던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제사를 우리 부부가 살아 있을 때까지는 지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런 사정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최소한 이 부분에서만큼은 내가 아내에게 크게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쁜 인간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다지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다. 아내가 그렇게도 제사를 고집하는 이유를 알기 때문이다. 특정 종교가 없는 아내는 요즘 사람답지 않을 정도로 무속적인 믿음이 강한 사람이다. 아내는 늘 내게 입버릇처럼 말한다. 조상 제사를 게을리하면 우리가 잘 안 되는 것은 물론 자식에게도 해가 끼친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 해가 자식에게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물론 본인 입으로도 그렇게 말했다.


이미 지나간 일, 지금에 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 같은 사람은 결혼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철저하게 혼자 살아야 하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그냥 혼자 세상에 태어나 혼자 모든 걸 감당하면서 혼자 조용히 세상을 떠났어야 할 사람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반 배정 결과 발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