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야의 돋보기] 제7화
써로게이트

by 순야 착지



상처받지 않는 ‘가짜 몸’과 훼손된 윤리


월요일 아침, 우리는 스마트폰 화면 너머로 정제된 텍스트와 이모티콘을 보내며 하루를 시작한다. 진짜 표정과 떨리는 목소리는 숨긴 채, 매끄럽게 편집된 디지털 자아를 세상에 내보낸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혹은 귀찮아서 우리는 점차 진짜 몸의 접촉을 피하고 대리물을 앞세운다.

다시 본 조나단 모스토우 감독의 영화 《써로게이트》는 이러한 현대인의 욕망이 극단으로 치달은 미래를 그린다. 사람들은 안전한 방 안에 누운 채, 늙지도 다치지도 않는 완벽한 대리 로봇(써로게이트)에 접속해 세상을 산다. 나는 이 서늘한 디스토피아를 보며, 고통을 피하려다 삶의 진짜 윤리마저 잃어버린 비극과, 양극단을 벗어나는 불교의 중제(中諦) 사상을 떠올렸다.

상처받지 않는 삶은, 과연 살아있는 삶일까.


신체 현상학의 돋보기: ‘살아있는 몸’의 상실

영화 속 인물들은 폭행을 당해도, 차가 뒤집혀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로봇이 부서지면 그저 새 기계로 갈아타면 그만이다. 완벽히 안전한 삶을 얻은 듯하지만, 그들의 내면은 지독한 우울과 권태로 병들어 있다.

이 현상을 프랑스의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으로 읽어보면 비극의 이유가 명확해진다. 그는 세계를 인식하는 근원은 추상적인 정신이 아니라 오직 ‘살아있는 몸’뿐이라고 선언했다. 우리는 살갗에 닿는 바람의 차가움, 타인과 부딪힐 때의 통각, 심장 박동의 떨림이라는 ‘몸의 헐떡임’을 통해서만 세상과 진짜 관계를 맺는다.

영화 속 인간들은 기계의 시각과 청각 데이터만 전송받을 뿐, 세계와 살을 맞대고 부딪히는 신체성을 거세당했다. 상처받을 가능성을 차단하는 순간, 삶의 생생한 기쁨과 연결감마저 함께 증발해 버린 것이다.


윤리학의 돋보기: 레비나스와 타자의 연약한 ‘얼굴’

더 끔찍한 것은 써로게이트의 세계에서 인간성에 기반한 ‘윤리’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타인을 짓밟고 부숴도 진짜 피가 흐르지 않기에, 거리는 무감각한 폭력과 쾌락으로 넘쳐난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윤리의 출발점을 타자의 헐벗고 연약한 ‘얼굴’에서 찾았다. 늙고 병들며 언제든 죽을 수 있는 타인의 연약한 맨얼굴을 마주할 때, 인간은 비로소 이성적 판단 이전에 “당신을 다치게 하지 않겠다”는 근원적인 윤리적 책임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써로게이트의 매끈한 티타늄 피부와 늙지 않는 기계 얼굴에는 이 ‘연약함’이 없다. 상처받을 수 없는 완벽한 아바타들 사이에서는 공감도, 자비도 피어날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이 언제든 부서질 수 있는 유한한 존재임을 자각할 때만 타인의 아픔에 진정으로 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돋보기: 가(假)와 공(空)을 껴안는 중도(中道)의 길

불교 천태 교학의 눈으로 보면 써로게이트의 세계는 가제(假諦)와 공제(空諦)의 극단적인 분열이다. 거리를 활보하는 매끈한 써로게이트는 인연 따라 잠시 만들어졌으나 실체가 없는 가짜 몸(假諦)이다. 반면, 방 안의 의자에 누워 빛도 보지 못하고 웅크려 있는 인간의 흉한 실체는, 세계와 단절된 텅 빈 고립(空諦)이다.

영화의 주인공 톰 그리어(브루스 윌리스 분) 형사는 아들을 사고로 잃은 깊은 상실감을 안고 살아간다. 그의 아내 매기 역시 그 슬픔과 우울증, 그리고 늙어가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견디지 못해 방문을 굳게 걸어 잠근다. 그녀는 어두운 방 안에서 약물에 의존한 채, 오직 젊고 완벽한 '써로게이트'의 몸으로만 세상을 상대한다. 남편이 "진짜 당신의 얼굴을 보고 싶다"며 방문 밖에서 애원해도, 아내는 차가운 기계 몸을 내세워 진짜 접촉을 거부한다.

사건을 파헤치던 그리어는 마침내 써로게이트 시스템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치명적인 바이러스 무기를 손에 쥐게 된다. 그는 깨닫는다. 이 완벽한 대리 로봇들이 인간의 고통을 치유해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슬픔을 직면할 용기를 빼앗고 인간을 방치된 시체처럼 썩어가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결국 그리어는 아내를 비롯한 인류가 상처투성이의 진짜 삶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시스템을 복구하는 대신 전 세계 모든 써로게이트의 접속이 끊어지도록 바이러스를 방관하는 결단을 내린다.

그의 선택과 함께 길거리를 활보하던 수억 대의 완벽한 기계들이 일제히 고철처럼 쓰러진다. 적막이 흐른 뒤, 방 안에 숨어 지내던 사람들은 주름지고 병든 진짜 몸을 이끌고 햇빛 속으로,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조심스레 걸어 나온다. 굳게 닫혀 있던 그리어가(家)의 방문이 열리고, 초췌한 진짜 얼굴을 한 매기가 떨리는 발걸음으로 걸어 나와 남편의 품에 안겨 처음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이 눈부신 결말이 바로 불교가 말하는 중제(中諦)이자 중도(中道)의 순간이다. 중도는 고통이 없는 완벽한 가상 세계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늙고 병들고 상처받는 내 진짜 몸을 이끌고 진흙탕 같은 세상(사바세계)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훼손되기 쉬운 이 육신을 입은 채, 상실의 슬픔을 회피하지 않고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삶. 그 상처투성이의 현실 자체가 우리가 딛고 서야 할 유일한 진리임을 보여준다.


나를 항복시키는 월요일의 돋보기

오늘 아침, 당신은 어떤 써로게이트를 앞세워 세상과 만나고 있는가. 상처받지 않으려고 적당한 거리두기라는 아바타를, 혹은 화려한 스펙과 직함이라는 기계 몸을 겹겹이 두르고 있지는 않은가.

안전한 방패 뒤에 숨으면 당장의 고통은 피할 수 있겠지만, 타인의 따뜻한 체온도 영영 느낄 수 없다.

레비나스의 말처럼, 윤리와 사랑은 나와 타인의 연약함이 맨몸으로 부딪힐 때 비로소 피어난다. 상처받을까 두려워 방문을 잠갔다면, 이제는 그리어의 아내처럼 진짜 문을 열고 세상의 찬 바람을 맞을 때다. 부서지고 상처받을 수 있기에, 우리의 삶은 그토록 눈부신 것이다.


[연재 알림]

〈순야의 돋보기〉는 매주 월요일 아침 10시, 바쁜 일상 속 잠시 머리를 식히는 지혜의 스토리를 배달합니다.

한 주의 시작을 알리는 이 짧은 글이, 여러분의 마음에 투명하고 평온한 돋보기 하나를 놓아드리길 바랍니다.


[순야의 철학 서재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① 모리스 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 (류의근 역, 문학과지성사)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을 깨고, 세계를 인식하는 주체로서 '몸'의 지위를 복권시킨 신체 현상학의 기념비적 저작입니다. "나는 나의 몸이다"라는 명제의 철학적 깊이를 맛볼 수 있습니다.

②에마뉘엘 레비나스, 『윤리와 무한』 (강영안 역, 철학과현실사)

'타자의 얼굴'이 어떻게 우리에게 윤리적 명령을 내리는지, 레비나스의 사상을 대담 형식으로 비교적 쉽게 풀어낸 입문서입니다. 타인과의 진정한 마주침에 대해 사유하기에 가장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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