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공원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천태학의 아득하고 깊은 바다인 '일념삼천(一念三千)'과 '성구설(性具說)'을 화두로 삼아 명상에 잠깁니다. 찰나의 한 생각 속에 온 우주가 담겨 있고, 가장 미천한 중생의 본성 속에도 이미 부처의 지혜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는 이 거대한 진리는 머리로는 경이롭지만 가슴으로 체득하기란 늘 아득합니다. 관념의 우주를 헤매다 번쩍 눈을 떴을 때, 내 발밑의 아주 작은 생명이 그 막막한 교리를 눈앞의 생생한 실상(實相)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었습니다.
내 시선이 가닿은 곳은 벚나무 잎사귀 위, 아주 작은 연두색 애벌레 한 마리였습니다. 한 발 떨어져서 무심코 보면 잎맥의 일부인 양 미동도 없는 정적(靜)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허리를 굽혀 숨소리조차 죽이고 들여다보니, 녀석의 세계는 맹렬한 역동입니다. 작은 턱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오물오물' 자기 몸집보다 큰 잎사귀를 갉아 먹고 있습니다. 하찮은 미물이라 여겼던 저 작은 점 같은 생명은, 장차 창공을 나는 나비가 되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허락된 세계를 온몸으로 삼키고 소화하는 중이었습니다. 가장 멈춰 있는 듯한 곳에서 가장 폭발적인 우주의 에너지가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애벌레의 미세한 '오물거림'은 단순한 턱짓이 아닙니다. 천태학의 성구설(性具說)은 가장 미천한 축생의 본성에도 이미 깨달은 부처의 성품이 온전히 갖추어져 있다고 가르칩니다. 잎사귀를 갉아먹는 저 작은 애벌레 안에는 이미 찬란한 나비의 날갯짓이 완벽하게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 찰나의 '오물거림(일념)' 속에는 과거의 씨앗, 현재의 고군분투, 미래의 비상이라는 삼천 대천세계의 우주(일념삼천, 一念三千)가 모두 응축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관념 속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지만, 진리는 '오물오물' 오늘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내는 당신의 밥술 위에, 그리고 눈앞의 작은 애벌레의 턱짓 속에 이미 우주적 크기로 꿈틀대고 있습니다.
일요일 아침의 짧은 만남 한 주를 차분히 정리하고 새로운 내일을 그려보는 일요일 오전 10시, 늦은 아침의 여유 속에 [순야의 단상]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쉼표를 찍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글을 마치며, 한 주의 시작과 끝이 모두 평온하시길 기원합니다. 몸도 마음도 정갈하고 행복한 한 주 되시길 바라며, 다음 주 일요일 아침에 맑은 향기를 담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이제야, 있는 그대로 본것인가? 여덟, 졸음과 경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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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있는 그대로 본것인가? 일곱, 개구리와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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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있는 그대로 본것인가? 여섯, 봄비와 새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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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있는 그대로 본 것인가? 다섯, 벚꽃과 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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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있는 그대로 본 것인가? 넷, 매화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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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있는 그대로 본 것인가? 셋, 솔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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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있는 그대로 본 것인가? 둘, 동백과 동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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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있는 그대로 보이는가? 하나, 고드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