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있는 그대로 본 것인가?
여덟, 졸음과 경적

by 순야 착지

허공을 가르는 경적, 지금을 깨우다


명상 노트

울산대공원 벤치에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호흡을 챙겨봅니다. 들숨과 날숨을 좇는 수식관(數息觀)으로 마음을 가라앉히다 보면, 어느새 봄볕의 온기에 취해 호흡을 놓치고 맙니다. 나와 세상의 경계가 지워진 듯하지만, 이는 지혜가 발현된 투명한 고요가 아니라 그저 안개처럼 뿌연 무기력 상태, 즉 명상의 가장 큰 장애물인 '혼침(昏沈)'에 빠진 것입니다. 고요함(止)에만 집착하다 깨어있음(觀)을 잃어버린, 가짜 삼매의 함정이었습니다.


일상의 시선

생각마저 멈춘 듯한 아득하고 나른한 늪으로 속절없이 빠져들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곁을 지나던 자동차가 "빠앙!" 하고 날카로운 경적을 울렸습니다. 무거운 솜이불 같던 침묵이 단숨에 찢겨 나갔습니다. 화들짝 놀라 눈을 번쩍 뜨는 찰나, 시야를 가리던 졸음의 장막이 걷히며 놀라운 풍경이 밀려왔습니다. 눈앞에서 흔들리는 선명한 벚꽃 잎의 질감, 뺨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 지나가는 사람들의 경쾌한 발걸음 소리까지. 뿌연 환상에서 깨어나, 생생하게 맥동하는 '지금 여기'의 실상(實相)으로 온전히 착지하는 눈부신 순간이었습니다.


순야의 단상 (순야시)

봄볕 든 단잠

빠앙! 허공 가르니

번쩍 깬 지금


문구 해석

봄볕 든 단잠: 마음을 비웠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알아차림을 놓치고 뿌연 졸음(혼침) 속에 가라앉아 있는 수행의 정체기입니다.

빠앙! 허공 가르니: 잠들어 있던 의식을 매섭게 내리치는 도심 속의 죽비 소리이자, 번뇌망상을 일격에 베어버리는 지혜의 검입니다.

번쩍 깬 지금: 관념의 늪에서 빠져나와,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현재'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맑은 각성의 상태입니다.


교리 한 마디: 혼침(昏沈)을 깨우는 지관쌍운(止觀雙運)

천태학의 핵심 수행법은 지관(止觀)입니다. 어지러운 마음을 한곳에 그쳐 고요히 하는 것이 '지(止)'요, 그 맑아진 눈으로 사물의 참모습을 뚜렷하게 비추어 보는 것이 '관(觀)'입니다. 이 둘은 수레의 두 바퀴처럼 함께 굴러가야 합니다(지관쌍운). 벤치에서 봄볕에 꾸벅꾸벅 조는 것은 고요함(止)에만 치우쳐 맑게 깨어있는 지혜(觀)를 잃어버린 혼침(昏沈)의 병입니다. 이때 고막을 때린 날카로운 자동차 경적은 잃어버린 '관(觀)'을 되찾아주는 선지식의 매서운 할(喝)과 같습니다. 소음이라 여겼던 도심의 경적 소리가 내 안의 혼침을 깨는 부처님의 설법이 될 때, 이 시끄러운 세상은 그 자체로 가장 훌륭한 명상당이 됩니다.


[연재 시간 알림]

일요일 아침의 짧은 만남 한 주를 차분히 정리하고 새로운 내일을 그려보는 일요일 오전 10시, 늦은 아침의 여유 속에 [순야의 단상]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쉼표를 찍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평온을 비는 마음]

글을 마치며, 한 주의 시작과 끝이 모두 평온하시길 기원합니다. 몸도 마음도 정갈하고 행복한 한 주 되시길 바라며, 다음 주 일요일 아침에 맑은 향기를 담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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