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다들 찻잔을 비웠으면 한 잔 더 들게나. 지난번엔 룸비니 동산에서 천지를 진동시킨 아기 부처님의 첫 외침까지 이야기했지? 오늘은 그 경이로운 아기를 데리고 왕궁으로 돌아온 날의 이야기를 해줌세."
룸비니에서 가비라 성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야말로 꽃길이었어. 정반왕은 친히 성문 밖까지 마중 나와 아기를 안아 올리며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했지. 성안의 백성들은 거리마다 오색 비단을 걸고 향을 피워 위대한 왕자의 귀환을 축복했단다.
그런데 이때, 히말라야 깊은 산속에서 도를 닦던 아시타(Asita) 선인에게 기이한 일이 벌어졌어. 고요히 명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눈부신 금빛 서광이 비치고 천상의 신들이 꽃잎을 뿌리며 춤을 추는 게 아니겠나? "드디어 인류를 구원할 태양이 가비라 왕궁에 떴구나!" 선인은 지체 없이 구름을 가르듯 산을 내려왔어. 백팔십 리 길을 단숨에 달려온 선인이 왕궁 문 앞에 서서 지팡이를 세 번 두드리자, 그 위엄에 놀란 문지기들이 길을 열어주었단다.
정반왕은 이 신비로운 선인을 맞이하기 위해 손수 문밖까지 걸어 나왔어. 선인의 발을 씻겨드릴 맑은 물과 향기로운 꽃방석을 준비하고, 가장 높은 자리를 내어드리며 정중히 예를 갖추었지. "대선인이시여, 이 깊은 산골을 내려오신 연유가 무엇입니까?" 왕의 물음에 선인은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어. "하늘의 소식을 듣고 새 시대의 주인공을 뵙고자 왔나이다."
왕이 조심스럽게 아기 왕자를 데려오자, 아시타 선인은 돋보기를 보듯 아주 세밀하게 아기를 살피기 시작했어. 아기의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샅샅이 훑어보던 선인의 눈동자가 경이로움으로 떨리기 시작했지. 아기의 발바닥에 새겨진 수레바퀴 문양(천폭륜상)을 만져보고, 미간 사이에서 빛나는 하얀 털(백호)과 상투처럼 솟은 정수리(육계)를 보더니 갑자기 선인의 어깨가 들썩이며 엉엉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리는 게 아니겠나?
정반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 "선인이시여, 왜 이리 슬피 우시는 거요? 혹시 우리 아기에게 무슨 불길한 일이라도 있는 것이오?"
그러자 아시타 선인이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어. "대왕이시여, 걱정 마소서. 이 아기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몸에 서른두 가지의 거룩한 특징을 모두 갖추고 계시니, 장차 왕위에 계시면 온 세상을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되실 것이요, 만약 출가하여 도를 닦으시면 온 인류를 구원할 부처님이 되실 분입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벅차오르면서도 다시 물었지. "그토록 기쁜 일인데 왜 그리 슬피 우시는 거요?"
아시타 선인이 깊은 탄식을 내뱉으며 말했어. "대왕이시여, 저는 이미 지는 해와 같습니다. 이 성자께서 장차 깨달음을 얻어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감로수 같은 법문을 들려주실 때, 저는 이미 흙이 되어 그 진리의 말씀을 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 귀한 인연을 놓치는 것이 너무나 원통하고 한스러워 이 늙은이가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 왕자로 태어났으나 왕의 길보다 더 높은 '성자'의 길을 예고받은 이 아기... 정반왕의 마음은 이때부터 기쁨과 불안으로 교차하기 시작했단다. 인류의 스승이 될 씨앗은 이렇게 왕궁의 화려함 속에서도 조용히 싹을 틔우고 있었던 게지.
이 이야기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참고 경전: 『불소행찬(佛所行讚)』 및 『수타니파타(Sutta Nipāta)』
『불소행찬』은 아시타 선인이 아기 왕자의 관상을 보며 감격하는 장면을 시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초기 경전인 『수타니파타』는 선인의 눈물을 통해 진리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희유(稀有)한 일인지를 생생하게 전합니다.
1. 삼십이종상(三十二種相): 성자의 서른두 가지 증표
성인이나 부처님만이 갖춘 신체적 특징으로, 전생에 쌓은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의 결과물입니다.
족안평상(足安平相): 발바닥이 평평하여 땅에 빈틈없이 닿음 (평등한 자비).
천폭륜상(千輻輪相): 발바닥에 천 개의 살을 가진 수레바퀴 문양이 있음 (진리의 전파).
수족지장상(手足指長相): 손가락과 발가락이 유난히 길고 섬세함.
수족유원상(手足柔軟相): 손과 발이 비단처럼 부드럽고 탄력이 있음.
수족지망상(手足指網相):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그물이 있어 중생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건짐.
족근구만상(足跟具滿相): 발꿈치가 원만하고 풍만하여 보기 좋음.
족부고상상(足跗高上相): 발등이 높고 원만하여 품위가 있음.
천여록왕상(腨如鹿王相): 장딴지가 사슴 왕처럼 탄탄하고 매끄러움.
수수과슬상(手垂過膝相): 서 있을 때 손을 내리면 무릎 아래까지 닿음 (광활한 자비).
마음장상(馬陰藏相): 성기가 몸 안으로 감추어져 있어 청정함을 상징함.신광대구상(身廣大具相): 키와 팔의 길이가 같아 몸의 균형이 완벽함.
모공생청모상(毛孔生靑毛相): 모공마다 푸른 빛의 털이 하나씩 솟아 있음.
신모상향상(身毛上向相): 몸의 모든 털이 오른쪽으로 말리며 위를 향해 있음.
신진금색상(身眞金色相): 피부가 순금빛으로 빛나며 깨끗함.
신광면외상(身光面外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사방을 비춤.
피부세활상(皮膚細滑相): 피부가 너무나 매끄러워 먼지나 물기가 묻지 않음.
칠처구만상(七處具滿相): 두 발바닥, 두 손바닥, 두 어깨, 정수리가 풍만함.
양액하만상(兩腋下滿相): 양 겨드랑이가 패이지 않고 풍만하게 차 있음.
신여사자상(身如師子相): 상체가 사자처럼 당당하고 위엄이 있음.
신단직상(身端直相): 몸이 굽지 않고 곧으며 단정함.
견원만상(肩圓滿相): 어깨가 둥글고 원만하여 믿음직함.
사십치상(四十齒相): 치아가 마흔 개로 고르고 가지런함 (보통 사람은 28~32개).
치백제상(齒白齊相): 치아가 눈처럼 희고 촘촘하여 틈이 없음.
치불소상(齒不疎相): 치아가 벌어지지 않고 단단하게 박혀 있음.
사자협상(師子頰相): 턱이 사자처럼 풍만하고 위엄이 있음.
미중득상미상(味中得上味相): 혀가 어떤 음식을 먹어도 가장 수승한 맛으로 바꾸어 중생을 교화함.
대설상(大舌相): 혀가 길고 넓어 내밀면 얼굴 전체를 덮을 정도임 (진실한 말의 상징).
범음상(梵音相): 목소리가 맑고 웅장하여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함.
안색여청련화상(眼色如靑蓮華相): 눈동자가 푸른 연꽃처럼 맑고 깊음.
안첩여우왕상(眼睫如牛王相): 속눈썹이 소의 왕처럼 길고 가지런하여 자비로움.
백호상(白毫相): 미간에 하얀 털이 있어 지혜의 빛을 뿜어냄.
육계상(肉髻相): 정수리에 뼈가 상투처럼 솟아오른 모습 (무궁한 지혜).
2. 전륜성왕(轉輪聖王)과 수레바퀴(輪)
전륜성왕: 무력이 아닌 '정의(正法)'로 온 세상을 평화롭게 다스리는 가장 이상적인 제왕을 뜻합니다.
수레바퀴(Chakra): 전륜왕의 상징이자 무기입니다. 왕이 가는 곳마다 이 바퀴가 먼저 굴러가 길을 닦으며, 모든 나라가 싸움 없이 스스로 왕에게 귀순합니다. 훗날 부처님의 가르침이 퍼져나가는 것을 '법륜(法輪)을 굴린다'고 표현하게 된 기원이 됩니다.
3. 감로(甘露)의 법문
인도 신화의 불사약 '암리타'에서 유래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중생의 번뇌라는 갈증을 해소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므로 이를 '감로수의 법문'이라 부릅니다. 아시타 선인은 바로 이 지혜의 비를 맞지 못함을 슬퍼한 것입니다.
<순야옹의 수목 오후 차담>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오후 1시, 차 한 잔 나눌 때 올리겠습니다.
순야옹(純爺翁)의 목요일 오후 차담5화 천상천하유아독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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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야옹(純爺翁)의 목요일 오후 차담 4화 룸비니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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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야옹(純爺翁)의 목요일 오후 차담 3화 코끼리 태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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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야옹(純爺翁)의 목요일 오후 차담 2화 사바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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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야옹(純爺翁)의 목요일 오후 차담 1화 수미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