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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 비밀의 서막

잔혹 콩트 스핀오프 : RMS(Root Mean Sqare) 연산법

by 하이경

이렇다 하게 딱히 특정하여 지은 죄도 없었지만, 주변이 시끄러워질 것을 염려한 이경은 파이자르 노인의 조언대로 강 교수의 얼토당토 아니한 공갈협박(恐喝脅迫)에 시간을 저축할 목적에서 탈출하듯 서둘러 동물 보호소를 퇴직하였다. 한동안 방구석에 틀어 박힌 이경은 여유로운 일정의 여행계획을 작성하고 있었다. 파이자르 노인이 일러주는 대로 시간을 죽이지 말고 저축을 해야 한다는 조언에 따라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UBS 본사를 방문하기로 결심하였다. 최소한의 가벼운 경무장을 챙겨 떠나기로 한 이경은 일정상 직항 편에 문제가 있음을 파악하자,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여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하는 항공 노선을 선택하여 일정을 소화하기로 마무리하였다.

며칠 후, 프랑크푸르트행 KLM 기내에 탑승을 하게 된 이경은 한번 더 꼼꼼히 일정을 확인하던 도중에 문득, 파이자르 노인과 나눴던 대화 내용을 기억으로부터 호출하고 있었다. 소장에게 보호소를 퇴직하겠노라고 이경이 양해를 구하기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퇴근을 서두르던 무렵 보호소 TV에서는 이른바 ‘온라인 거대금융 사기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을 때 파이자르가 이경에게 물었다.


“Mr. Lee, Have you ever heard of the term online drop?”

이경이 잘 모르겠다고 하니 파이자르가 껄껄 웃더니 답하기를, 그건 온라인상에 떠있는 비정형 재화로 고객이 찾아가지 않거나, 찾아간들 별의미가 없는 대단히 적은 푼돈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경이 대답하기를,


“그러니까 그걸 굳이 한국어로 해석하자면, 온라인 낙전(落錢) 쯤 되겠군요. 얼핏 들어본 적은 있지만 확실히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온라인 낙전은 액수가 얼마나 될까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습니다. 이 낙전을 정의하자면,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구매한 정액제 상품이나 선불 충전금, 상품권 등의 기본 제공량을 유효기간 내에 사용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미사용 금액이나 고객들이 거래 은행에서 찾아가지 않은 극소액의 잔고인데, 존재할 뿐 소비할 수 없는 아주 적은 금액을 의미하지요.”


“그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만, 그런 극소액의 온라인 낙전의 액수가 상상을 초월한다고요?”


“그렇습니다. 이런 낙전은 원래 소유자가 신경도 안 쓸뿐더러 더구나 활용가치가 거의 없기에 자연스럽게 자투리 재화가 되지요. 이렇게 남은 미사용 금액은 유효기간이 지나면 회계처리상 서비스 제공업체의 부가 수입으로 당연귀속되는 경우가 많지만, 은행 같은 경우라면 영구 박제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문제는 온라인 낙전의 유효기간 시간차가 큰 허점으로 작동을 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허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를테면, 시스템 컴퓨터를 해킹하여 저지를 수 있는 슈킹(しゅうきん) 수법 같은 것을 지칭하나요?”


“그렇습니다. 프로그램으로 제어가 가능한 순간 초 즉, 장부에 기재되기 직전으로 유효기간 백만분의 1초 전에 낙전을 긁어오는 수법이라는 겁니다. 사실 RMS 연산으로 0.001초면 충분하기도 하지만...”


그런 행위는 일종의 사기나 아니면 절도와 같은 치사한 범죄행위로 판단됩니다.”


“치사할 망정, 악랄하지는 않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범죄로 볼 수는 있지만, 손해를 본 당사자가 없으니 범죄행위로 성립될 수 없지요. 게다가 이것을 범죄로 규정하려면 손해를 입은 당사자와 절취를 당했다는 범죄의 직접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겠지요, 법리상 증거재판주의이니 만큼 범죄로 성립되려면, 범죄의 물리적 증거가 필요하겠지요?”


“예를 들어, 1 페니 미만의 소액이나 0.1유로 미만의 극소액 피해를 인지하여 누군지 이것을 추적을 한다고 한들 경로 꼬리를 잘라 무한루프 트랙에 빠지도록 코딩을 하면 그만입니다. 하기는 아무리 예쁘게 포장한들 온라인 도적질은 맞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익이 아닌 공영의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쓸모가 막연한 푼돈을 모아 사회에 환원하는 겁니다.”


“온라인 로그추적 경로 꼬리를 잘라서 무한루프에 빠트린다고요? 미스터 파이자르는 그런 기막힌 코딩이 가능하기는 한 겁니까?”


“하하... 저는 불가능합니다. 미스터 리도 낙전 슈킹에 흥미가 있으신 거로군요? 사실 그 방법으로 미국에 널려있는 낙전을 쓸어와 가엾은 난민들에게 헌사하는 독일 친구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기는 합니다."


"하긴, 그런 고도의 해킹을 수행하려면 어지간한 데이터 마이닝 실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불가능하겠지요?"


"미스터 리! 온라인 낙전도 일종의 데이터입니다. 데이터에는 무궁무진한 가치가 숨어있지요. 진정한 보물은 땅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머릿속에 있는 데이터와 그들의 인식입니다.”


“십분 이해하였습니다. 그런데, 방금 전에 말씀하시던 0.001초면 충분하다는 RMS 연산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RMS 연산법이란 제곱(Square) > 평균(Mean) > 제곱근(Root) 순서로 거듭하여 계산하는 방법으로 +,- 가 나노초 간격으로 계산된 결괏값이 변하는 마치 사인파의 파동과 흡사합니다. 이건 단순히 0.001초 이내에 장부상의 합계를 속이는 거짓 연산자 함수지만, 사람들은 거짓이 낳은 계산 결과물을 대할 때면 거짓 자체를 진실로 믿어버리는 우스꽝스러운 성향에서 탈출하지 못합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경이 탑승한 프랑크푸르트행 KLM 항공기는 이륙하여 백색 구름 속을 순항 중이었고, 피곤함과 막연한 기대, 그리고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던 이경은 서서히 깊은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여 간단한 입국절차를 마친 이경이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 반쯤이었다. 낯선 유럽의 중심 스위스의 도시 취리히, 정도 이상으로 정갈하고 깔끔하여 괜시리 겁에 질리게 하는 도시, 나지막한 이국풍의 건물들과 명품 부티크, 정갈한 트램이 게으름뱅이처럼 느리게 오가는 거리 풍경에서 이경은 자신이 홀연히 도망쳐 낯선 땅에 안착해 온 난민 신세와 다를 바 없다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이경이 UBS 방크(Bank) 본사를 찾아간 날, 하늘은 쨍하게 맑았고 성 베드로 성당의 높은 첨탑 아래에 있는 시계탑이 도시를 굽어보고 있었다. 취리히 시내를 관통하는 운하를 지나 UBS 본사 건물에 들어선 이경은 낡은 옷차림의 파이자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계 금융의 중심이 주는 위압감에 압도되었다.


총괄매니저를 접견하기 위해 안내된 방은 깔끔하고 절제된 화이트 톤으로 꾸며져 있었고, 곧이어 들어선 매니저, ‘올리버 슈타이너(Oliver Steiner)'는 완벽하게 재단된 슈트 차림에 차가운 푸른 눈과 훤칠한 키, 스위스 은행가의 전형적 금융인 스타일의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매듭!

To be continued in the next episode...

(侮蔑)의 달인(達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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