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엄마...

그 평범한 밥상의 무게

by 보라빛창가

새벽에 호스피스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긴급 호출이었다.

입소할 때부터 엄마의 상태가 좋지 않아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듣기 했지만...

그 시간이 그렇게 빠르게 올 줄은 몰랐다.


언니에게 연락을 한 후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 날....

새벽녘...

안개가 자욱한 그 길을 잊을 수 없다....

그 길은 너무 무섭고 외로웠다.

이제 끝인 건가?

아니 아직 기회가 있을 거야...


병원에 도착하니 간호사가 급히 병실로 데려갔다. 마침 언니와 형부도 와 있었다.

엄마는 산소호흡기를 끼고 계셨다.

호흡이 무척 거칠어 보였고 발바닥이 보라색으로 변해 있었다.

좋은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기겠다고 장거리 이동을 했던 게 엄마에겐 무리가 아니었나 싶었다.

끝까지 내 욕심 때문에 엄마가 고생을 하는 듯했다. 엄마 의견은 항상 후순위였다.


다행히 호흡이 조금씩 안정화돼 보이자 언니와 형부는 집으로 돌아갔다.

난 돌아가지 않고 엄마와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나 혼자만의 일방적인 이야기였다.

그래도 엄마가 듣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 엄마, 내가 엄마에게 함부로 대해서
미안해... 용서해줘..."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 고마웠다는 말보다 미안하단 말이 먼저 나왔다.

나에겐 너무도 편한 존재였기에 온갖 투정에 짜증을 부렸던 것 같다. 그래도 속상한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전화했던 사람이 엄마였다. 엄마는 항상 " 고생한다 우리 딸... " 하면서 내편을 들어주셨다. 음식을 하다가 레시피가 헷갈리면 엄마에게 전화했다."엄마 간장 한 숟가락이야 두 숟가락이야...?" 매번 같은걸 물어봐도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음식도 만들어 먹고 대단하네 우리 딸..." 하면서 웃으셨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는 엄마가 갑자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팔이 자꾸만 벽에 부딪혔다. 자의적으로 조절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간호사에게 급히 연락해 쿠션을 대주었다. 몸부림은 멈추지 않았다.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


이제 엄마가 떠나려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엄마 팔 아파... 이제 가도 돼....
나 괜찮아... 엄마... 잘 가... 천국 가서 꼭 만나자..."


부모의 임종을 보는 자식은 정해져 있다고 하던데 운 좋게도 그게 나여서 다행이었다.

엄마는 크게 세 번 호흡하고

후... 내 쉰 다음에 숨을 멈추셨다.

그렇게 엄마가 떠났다...

이제 안 아프겠지...

마지막으로 엄마를 안아보았다.

아직 따뜻했다.

거칠거칠한 손도 꼭 잡아보았다.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엄마 안녕..."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의사가 와서 사망진단을 했다.

남편과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남겨진 사람들에겐 생각보다 슬픔을 느낄 겨를이 없다.

급하게 장례식장을 잡고 여러 가지 설명과 함께 서류처리를 하느라 정신이 멍했다.

엄마와 함께 엠뷸런스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이제 끝났구나...

한숨이 길게 나왔다.

3개월간 엄마를 돌보며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이 생각이 났다.

그동안 못했던 효도를 3개월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더이상 후회는 없었다.

엄마는 나에게 마지막 기회를 줬던 게 아닐까?

남겨진 사람은 환자가 좀 더 오래 함께 하길 바라겠지만 병상에 오래 있는 것은 환자에겐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엄마는 또 나를 기다려 주었다.

언제나처럼...


장례식장에 가니 영정사진으로 쓸 사진을 달라고 했다. 어떤 사진으로 할지 생각나지 않아 핸드폰을 뒤져 보았다. 바로 전 해에 엄마 팔순 잔치 때 찍은 사진이 눈에 띄었다.

사진에서 엄마는 환하게 웃고 계셨다.

그 사진이 영정사진이 될지는 그 당시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분홍색 한복을 입은 너무 예쁜 우리 엄마....


다른 친구들보다 엄마가 나이가 많아 엄마와의 이별이 빠를 것이라는 각오는 했지만

친구들 중에 부모님상은 내가 거의 처음이었다. 친구들이 많이 와서 슬픔을 달래주었다.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도 와주었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슬픔을 함께 나누어 준 사람은 기억에 새겨진다.

나 역시 그런사람이 되야겠다고 다짐했다.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오자 그제야 슬픔이 밀려왔다.

방문을 닫고 침대에 누워 한참을 울었다.

집으로 챙겨 온 엄마 물건들을 옷장에 넣었다.

도저히 쳐다볼 수 없었다.

지금도 옷장에서 꺼내지 못한 채 남아 있다.

몇 년이 지나야 할지....


가족과 사별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슬픔은 커지고 ...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 사람의 부재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옛날 사람들이 왜 3년 상을 치렀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3년이 지나서야 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다.

오늘 꼭 부모님에게 전화를 해서 식사 약속을 잡았으면 한다.

메뉴는 ...

내가 먹고 싶은 것 말고...

내 자식이 먹고 싶은 것 말고...

부모님이 드시고 싶은 것으로 ...

유명 맛집이 아니여도 좋다. 이왕이면 내가 만든 음식이면 더 좋겠다.

그 평범한 밥상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면 한다.

그게 마지막 밥상이 될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됐다.


따뜻한 봄날...

엄마와 함께 맛있는 밥 한 끼를 먹고, 팔짱을 끼고, 동네를 산책하고 싶다.

산책하다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엄마가 좋아했던 카페라떼를 먹고 싶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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