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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빛창가 Oct 27. 2022

앤더슨 모바일

소설연재

오늘은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이다. 글로벌 기업 앤더슨 그룹의 통신회사인 앤더슨 모바일의 CEO가 회사에 방문하기로 되어 있다. 우리 회사와 협력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서명식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기 위함이다. 이번 행사는 우리 팀이 메인 진행을 맡게 되었고 나는 적성에도 안 맞는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사장님 이하 임원진들까지 모여 있는 회의실에 들어가니 나도 모르게 압박감이 밀려왔다.    


‘도대체 서명식 준비를 왜 우리 팀에서 해야 하는 거야... 아... 실수하면 어쩌지... 으.. 떨려.. ’     

     

숨을 고르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약속시간인 오후 2시가 되었지만 앤더슨 측에서 아직 도착을 하지 않아 행사가 지연되었다.


‘무슨 일이지?? 왜 안 오는 거야... 미치겠네... 마녀가 또 난리 치겠어...’


팀장 눈에서 레이저가 나왔다. 천만다행으로 5분이 지난 뒤 앤더슨 모바일의 총수가 도착하였다. 5분이 5시간처럼 느껴졌다. 예상치 못한 행사 지연으로 너무 긴장되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지만 사내 아나운서가 행사를 시작하자 겨우 정신이 조금 들었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앤더슨 모바일 CEO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왠지 낯익은 얼굴이었다.


“과장님, 앤더슨 모바일 CEO 엄청 젊네요... 아직 40도 안되어 보이는데... 그리고 엄청 잘생겼네..”

“저 사람이 앤더슨 그룹 장남이잖아... 현수 대리 진짜 모르는 거야?”

“헐.. 그렇구나... 몰랐어요...”


사장님과 앤더슨 모바일의 CEO는 문서에 서명 후 교환했고 기념사진 촬영을 했다. 다행히 행사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휴... 드디어 끝났다... 무슨 서명을 저리 요란하게 한담...’


행사를 모두 마치고 의전을 위해 회의실 앞에서 대기했다. 앤더슨 모바일의 CEO가 내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한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난 당황하여 깍듯이 인사를 했다. 그는 인사를 받고 일행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왜 저런 눈으로 날 보지?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근데 이 향기는... 마크의 향과 비슷하네...?’     


다른 사람에게서 마크의 향이 나자 갑자기 마크가 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마크에게 전화를 했지만 아쉽게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는 무슨 일을 할까? 영국 사람이라는 것과 이름 말고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섣불리 그에게 빠져버린 것 같아 두려웠다. 그에게 연락이 온건 퇴근 후 두세 시간이 지난 늦은 밤이었다.     


“Hi... baby... 좀 바빴어... sorry”

“괜찮아요... 그냥 목소리 듣고 싶었어요.”

“보고 싶진 않고? 흠... 실망인데...”

“나도 보고 싶지만... 지금은 너무 늦어서... 내일 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내 생각은 좀 다른데... 창밖을 봐봐...”


그가 와있었다. 이번엔 자주색 포르셰를 몰고 왔다.밑으로 내려가자마자 그의 품으로 달려가 폭 안겼다. 오늘따라 그의 키가 유난히 커 보였다.


“이게 다 당신 차예요? 도대체 차가 몇 대에요...?”

“음.. 내 차는 아니야... 난 아직 집도 못 구했는걸... 지금 호텔에 있어...”

“이런... 너무 불쌍한데요... 내가 집 구하는 거 도와줄까요?...”

“Thanks but.. 괜찮아 회사에서 알아서 할 거야.”

“마크 그렇게 이야기하니 엄청 Vip 인가 봐요...”

“Vip? 그럼 당연하지... 하하... ”        


우리는 서로 웃으며 마주 보았다. 그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피곤한데도 날 보러 와준 그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나 올라가도 돼?”

“네?... (집이 엉망인데...) 그럼 10분만 있다가 올라와요...”    

 

난 뛰어 올라와 미친 듯이 집을 치웠다. 벗어놓은 옷들... 양말... 먹다 남은 과자봉지들을 순식간에 어딘가로 쑤셔 넣었다. 다행히 저녁은 샌드위치라 싱크대는 깨끗했다.조금 뒤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여니 마크가 미소를 지으며 서있었다.    

 

“문이나 서랍 같은데 함부로 열지 말아요 ~ 알았죠? 괴물이 나올지도 모르니깐”

“하하... 알았어... 약속... 현수처럼 사랑스럽고 귀여운 곳이네...”

“커피 줄까요?”

“Yes... Thanks...”     


난 평소에 책 욕심이 많다. 새 책을 사면 왠지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넓지 않은 19평 오피스텔의 한쪽 벽면은 책장 가득 책으로 채워져 있다. 그는 나의 커다란 책장이 신기한 듯 눈을 반짝이며 구경하였다.


“현수도 책을 좋아하는구나... 음... Das Parfum(향수), 이 책 가지고 있네... 읽어보고 싶었는데...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좋아해? ”

“네... 그 사람 책은 다 읽어 봤어요...”

“그런데 영어책이네... 현수 읽을 수 있는 거야?”

“어머... 당연하죠... 나 이래 봬도 세원대 출신이에요... 물론 옥스퍼드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혹시 이 책 빌려줄 수 있어? 읽고 돌려줄게... 얼마 전 이 영화를 봤었는데 소설로 다시 읽고 싶었거든...”

“나 원래 책은 잘 안 빌려주는데... 마크 부탁이니 특별히 허락할게요...”

“oh... Thank you so much...”

“책으로 보면 더 으스스해요... 한편으론 그르누이가 참 불쌍한 것 같아요...

어릴 때 비참하게 버려진 것 만해도 안타까운데 향기가 없는 사람이라니 얼마나 안됐어요... 그가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는 이유도 향이 없다는 거잖아요... 그런 그가 천재적인 후각을 가졌다니... 정말 극적인 설정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르누이가 그토록 원했던 건 어쩌면 아름다운 향이 아닌 사랑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마지막에 그 향수를 자기 몸에 뿌리고 사람들에게 자기 몸을 내어주잖아요... 잔인한 살인마지만 참 불쌍한 사람이에요.”

“만약 사람에게 향이 없다면 어떨까? 그래도 서로에게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 현수에게는 시원한 바람 같은 향이나...”


그는 내 손을 끌어당겨 나를 안고는 내 목덜미에 코끝을 대고 간질였다.


“아... 간지러워요...”     


그의 입술이 내 목덜미에 닿았다. 순간, 그는 망설이고 있었다. 아마 내가 천천히 다가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기억했을 것이다. 한숨을 쉬고는 내 이마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리고는 아쉬운 듯 나를 꼭 안아주었다. 어느새 시간은 새벽 한 시를 향하고 있었다.     


“마크... 시간이 너무 늦었네요... 피곤할 텐데 빨리 돌아가 봐요... 내가 전화할게요... ”     


짧은 만남이 아쉬웠지만 피곤해 보이는 그를 서둘러 돌려보냈다. 그는 나를 다시 한번 꽉 안아주고 돌아갔다. 그가 떠나는 것을 찬찬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렇게 멋진 사람을 내가 만나도 될까?

그냥 호기심에 나에게 다가오는 거라면 어떻게 하지? 내 마음은 점점 저 사람으로 물들어 가는데... 또 상처받는 건 아닐까? 아냐...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자...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하다가 보면 어떻게든 끝이 있겠지...’     


내가 인간관계에 자신이 없어진 건 바로 그 사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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