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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빛창가 Oct 27. 2022

다가오는 그림자

소설연재

오늘도 어김없이 알람이 울렸다. 회사 갈 준비를 하면서 양치를 하는 데 갑자기 칫솔이 부러졌다.


“어머... 칫솔이 부러지다니...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기분 나쁘네.. 아침부터...”     


찝찝한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PC를 켜고 메일 확인을 했다. 그런데 아주 낯익은 Email 주소로 한통의 이메일이 와있었다.     


  안녕? 전화를 했는데 번호가 바뀌었더라.

  회사 email 주소밖에 몰라서 이렇게라도

  연락했어. 잘 지내지? 지난번에 공항에서 너를

  봤을 때 정말 놀랐어. 널 그렇게 마주치고   

  나서부터 난 잠을 잘 못 잤어. 너에게 미안한   

  마음에서도 그렇지만 사실은 니 옆에 있던 남자

  때문이야. 그 사람에 대해 꼭 할 말이 있어.

  시간이 된다면 잠깐 얼굴 보자.

  너에게 중요한 이야기야.    

 

강태성의 메일이었다. 벌써 헤어진 지 1년이 넘었는데 갑자기 만나자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마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긴 그때 보니 둘 사이에 뭔가가 있는 것 같긴 했는데... 그래... 아무래도 한번 만나봐야겠다.’     


회사가 끝나고 우리가 자주 가던 카페에서 그를 만나기로 했다. 그는 연애시절 나를 숨기고 싶어 하는 듯 항상 외진 곳에 있는 카페에서 날 만나곤 했다. 막상 그에게 빠져 있을 때에는 그런 것이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았지만 헤어지고 처음으로 그를 다시 만나러 가는 길에 내가 그동안 얼마나 불완전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곳은 좁은 골목길이라서 주차할 데도 없는 곳이었다. 차가 없었을 때는 몰랐던 불편함이었다. 멀리 큰길에 차를 주차하고 카페로 들어갔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현수야... 정말 오랜만이다. 우리 둘이 만나는 것”     


내가 그토록 빠져있었던 그의 버버 리향이 오늘따라 유난히 거슬렸다.     


“난 오빠와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게다가 오빠는 세라와 결혼하면서 공인이 되었잖아.

누가 보고 오해할 수도 있고... 필요한 이야기만 하고 싶어.”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때 니 옆에 있던 남자... 마크 앤더슨이지?”

“응, 맞아... 그 사람을 알아?”

“마크와 나는 옥스퍼드에서 유학했을 때 같이 공부했었어.

우린 친구였었지....”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친구였다고? 그런데 둘이 그렇게 편해 보이지는 않던데...”

“맞아... 나와는 악연이지...

영국에서 공부할 때 나에겐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어. 우리 셋은 자주 어울렸었지.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마크가 내 여자 친구를 유혹하기 시작했어...

결국 그녀는 날 버리고 마크에게 가버렸어.

갑작스러운 이별에 너무 힘들었어.

하지만... 마크는 그녀를 사랑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 그냥 내게서 뺐고 싶었던 거야. 장난감처럼... 마크는 자기가 원하는 걸 못 가지면 견디지 못하는 놈이었어. 의 집안은 영국에서 엄청나게 유명한 가문이야. 하지만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한 후 성격이 뒤틀린 채 자라났어. 어머니는 아들의 결핍을 채워주기 위해 원하는 모든 걸 주었지. 내 여자 친구를 뺏은 뒤 금방 싫증난 마크는 그녀를 버렸어. 그리고 충격을 받은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어. 난 그놈을 절대 용서할 수 없어.”     


강태성의 말을 들은 나는 한동안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내가 아는 마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항상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 집안이 대단하다는 사실 말고는 강태성의 말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고작 그런 말 하려고 부른 거야? 어쨌든 오빠 말은 잘 들었어... 그만 가볼게...”     


문을 향하여 나가는 내 등 뒤로 강태성이 소리쳤다.  

   

“넌 믿고 싶지 않겠지만 전부 사실이야. 한때 널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충고야. 마크를 믿으면 안 돼. 그만 헤어져!”     


강태성의 외침을 뒤로하고 문을 나섰다. 갑자기 하늘이 어둑해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소나기로 셔츠가 다 젖었지만 마크를 지금 당장 만나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다. 강태성의 말이 믿어지진 않았지만 지난번 마크의 다른 모습을 본 후부터는 그에게 내가 모르는 다른 면이 있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마크 다 거짓말이지?? 제발 아니라고 해줘... 강태성이 틀린 거라고...!!’  


급하게 차를 몰고 마크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 앞에 서서 망설이다가 초인종을 눌렀다. 마크는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란 눈치였다.     


“현수 무슨 일이야? 연락도 없이... 내가 없으면 어쩔뻔했어... 근데 비를 맞은 거야? 옷이 다 젖었네.. 이런... 어쨌든 welcome to my place”    

 

그는 커다란 수건으로 나를 감싸주고 따뜻한 커피를 주었다.     


“갑자기 와서 미안해요.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왔어요.”

“OK... Calm down... 무슨 일이야.. tell me.”


그는 무슨 일인지 궁금한 듯 내 눈을 바라보았다.


“강태성... Daniel kang을 안다고 했죠?”     


강태성의 이름이 나오자 다시 마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음... 알지.. 나도 사실 너한테 묻고 싶었어. 둘이 어떤 사이였는지...”

“전 남자 친구였어요. 결국 날 버리고 내 친구 세라와 결혼하게 됐지만..”

“역시 예상 대로군.... 현수... 잠시만 여기 있을래? 잠깐 주차장에 갔다 올게”

“왜요...?”

“잠시만...”     


그가 자리를 비운 후 천천히 그의 집을 살펴보았다. 화이트와 우드 메탈이 조화롭게 구성된 모던한 곳이었다. 벽에는 그의 20대 시절의 사진이 있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마 옥스퍼드에서 공부할 때였던 것 같았다. 액자가 조금 비틀어져 있는 것 같아 액자를 들어 올려 똑바로 하려는 순간 액자 뒤에서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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