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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빛창가 Oct 27. 2022

사고

소설연재

그건 오래된 사진이었다. 그러나 사진을 본 순간 온몸에 전기가 통한 듯 얼어붙었다. 사진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 마크와 강태성 그리고 한 여자...


‘이 여자... 얼굴이.... 이건 나잖아??’  


그녀는 나와 놀랍게도 닮아 있었다.   


이제야 퍼즐이 맞추어졌다. 날 처음 보았을 때 마크의 친구 준이 놀랐던 이유, 회사 미팅에서 마크의 형의 표정, 영국에 갔을 때 마크의 아버지가 나를 처음 보았을 때의 표정을 이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다들 사진 속 그녀와 너무도 닮은 내 모습에 놀랐던 것이다. 나 빼고 모두가 알고서도 쉬쉬 했던 것이다. 어떻게 서로 다른 타인이 이렇게까지 닮을 수 있을까... 내가 그녀와 닮았기 때문에  마크가 접근했던 거였다고 생각하니 소름 끼쳤다.

  

‘세상에... 이럴 수가... 강태성의 말이 맞단 말이야?’     


온몸이 떨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급하게 나가는 바람에 탁자에 있던 향수를 넘어뜨려 깨뜨렸다. 마크에게 항상 나던 그 향이었다. 그의 향기가 온 집안에 퍼져갔다. 그 순간 그 향기가 너무도 역하게 느껴졌다.  


“아야...!”

   

서둘러서 깨진 유리를 치우려 하다가 손을 베어 피가 났다. 선홍색 피가 손가락을 따라 흘러내렸다. 그때 마침 마크가 돌아왔다. 손에는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현수, 이 옷 내가 너 주려고... 사놨던 건데...”  

   

깨진 향수병과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마크는 너무 놀라 우두커니 서있었다.    

 

“무슨 일이야? 손에서 피가 나잖아. 현수! 왜 그래?”


마크는 바닥에 떨어진 사진을 보고 모든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 나는 울면서 있는 힘껏 그를 밀치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wait!!!”     


그리고는 나를 부르며 뒤를 쫓아왔다. 난 알 수 없는 공포감에 휩싸여 차를 몰고 달렸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그에게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와 함께했던 추억들이 영화 필름처럼 떠올랐다.

    

‘믿을 수 없어... 그의 모든 게 거짓이었나...’  

   

비는 더욱더 세차게 내렸다. 뒤를 보니 마크가 차를 몰고 쫓아오는 게 보였다. 눈물이 흘러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마크가 내 뒤에 바짝 따라붙자 덜컥 겁이 났다. 그를 따돌리기 위해 급하게 차를 돌렸다. 그도 나를 따라 차를 돌렸다.    


"쾅!!!"


좌회전을 하던 차와 그의 차가 부딪혔고 그 충격으로 그의 차가 미끄러져 도로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난 너무 놀라 급하게 차를 세웠다. 핸들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다.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아악!!


상상하기 싫은 일이 일어났을 것 같은 생각에 도저히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대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마크.. 아.. 어떻게 해”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가자 앰뷸런스 소리가 들렸다. 그의 차 앞으로 가니 하얀 셔츠는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고 그는 의식을 잃은 채 앰뷸런스에 실렸다.     


“아악..! 마크!! 눈을 떠요....!! 제발!!”


병원으로 가는 내내 난 그의 손을 잡으며 울부짖었다.     


‘이건 꿈이야... 진짜일리 없어.. 마크!’     


그는 다발성 골절로 인한 응급수술을 했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 3일이 지났다. 난 매일 그의 곁을 지켰다. 그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 때문에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때였다. 노크소리가 들리고 마크의 아버지가 병실로 들어왔다.     


“Excuse me.... Oh, God. Mark”     


그의 사고 소식을 듣고 급하게 연락받고 한국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갈색 머리에 언제나처럼 고급 정장을 입은 품위 있는 모습이었다. 뒤따라 들어온 사람은 그의 형이었다. 앤더슨 그룹 회장이 방문한 탓인지 병원 원장이 급하게 의료진들을 데리고 병실로 들어왔다. 병원의 모든 의료진이 다 와있는 것 같았다. 병원장은 마크의 자세한 상태를 설명해 주었다. 의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의료진이 돌아간 후 마크의 아버지는 나를 보며 물었다.     


“What Happened? ”

“It's my fault... I'm really sorry...”     


난 눈물을 흘리며 그 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해주었다. 옆에서 마크의 형이 통역을 도와주었다. 앤더슨 회장은 내 이야기를 듣고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눈에 나를 향한 원망이 언 듯 비치는 듯했다. 그는 한참 동안 마크의 손을 잡고 얼굴을 만졌다. 그리고 마크의 형에게 무언가 속삭였다. 마크의 형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보았다. 그는 마크와 나를 번갈아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당신이 영국에 왔을 때 제니와 많이 닮아서 가족들이 많이 다들 놀랐었어요. 마크가 그동안 이야기 못했었던 건 아마 당신이 오해할까 봐 그랬을 거예요. 이 사고는 당신 잘못 아니니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하시네요


그리고는 연락처를 적어주며 마크의 의식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해달라고 부탁하고 돌아갔다.    


나는 눈물이 범벅이 되어 마크의 얼굴을 만지며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그의 눈, 그의 코, 그의 입술에... 그러나 그는 여전히 깊은 잠에 빠진 듯했다.


“내가 바보였어요. 당신을 믿었어야 하는데 강태성 말만 믿고 당신을 의심했어요. 너무 미안해요. 이젠 당신을 믿을게요. 아니... 진실이 뭐든 상관없어요... 이번 일을 통해 당신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알게 됐어요. 제발 일어나요... 마크.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요.”     


그때였다. 마크의 손가락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리고 아주 잠시였지만 그가 실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마크!! 정신이 들어요?! 여기요... 빨리 와주세요...”


급하게 의료진을 부르고 걱정스럽게 그를 지켜보았다. 마크는 다시 눈을 감았지만 담당의는 좋은 신호라면서 나를 안심시켰다. 기적적으로 그날 이후 마크는 의식을 찾고 나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수준까지 회복되었다. 하지만 충격이 컸었던 탓인지 사고를 전혀 기억 못 하는 것 같았다. 그에게 자극이 될까 봐 그날 있었던 일은 절대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예전처럼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그 사진 속 여자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져 갔다.     


‘누굴까? 나와 너무나 닮은 그 여자... 제니라고 했지... 정말 마크 때문에 죽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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