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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빛창가 Oct 27. 2022

파티 초대

소설연재

“Baby, Good morning?”

“응... 잘 잤어요 ”

“음... 할 말이 있는데. 아버지가 우릴 파티에 초대하셨어. He’s birthday party.

하지만 혹시 불편하다면 안 가도 좋아. 갑작스러운 초대라 거절한다고 해도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니까”

“아니에요. 가고 싶어요. 게다가 어제 인사도 나누었는데 예의가 아니죠.”


마크는 놀라는 눈치였다.


“Really? 나도 예상치 못한 초대야. 그런데 격식 있는 자리라 캐주얼한 의상은 좀 곤란해. 그리고 정말 미안하지만 아침에 난 잠시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해. 내 비서 에밀리가 준비를 도와줄 거야. 아무래도 난 여자 옷 고르는 건 별로 도움이 안 되잖아. 다시 한번 미안! ”

     

그는 눈을 찡긋하며 이야기했다.    

 

아침식사후 커피를 마실 때쯤 비서 에밀리가 왔다. 다행히도 그녀는 한국인이었다. 세련된 단발머리에 스타일리시한 모습이었다. 안 그래도 여행 내내 영어 울렁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오랜만에 한국인을 만나니 반가웠다.     


“안녕하세요. 에밀리에요. 오늘 당신의 파티 준비를 도와드리려고 왔어요.”

“한국인이라 너무 반가워요. 하루 종일 영어에 시달려서 너무 힘들었거든요.”

“흐훗. 그러시군요. 전 한국말 서툴러요. 영국에서 태어났거든요. 엄마가 한국인이세요. 

마크가 비용 생각 말고 원하는 의상을 찾아드리라고 하셨어요. 너무 부럽네요 ~ 일단 저를 따라오세요.”


우리는 명품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가지 의상을 입어보았다. 역시 명품은 명품이었다. 세련되고 아름다운 의상들이 많았다. 옷을 하나씩 입어보니 내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마치 마크가 속한 세계의 사람 같았다.


‘와... 내가 아닌 다른 사람 같아. 명품이란 게 이런 거구나. 어쨌든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와 장인들의 손길을 거친 것이니 어쩜 당연하겠네.


그녀는 나를 위해 미리 몇 가지 스타일을 고민해 둔 것 같았다. 그 짧은 사이에 어떻게 그렇게 준비한 것인지 신기했다. 역시 프로는 달랐다. 하지만 여러 의상들을 입어 봤지만 도무지 결정을 할 수 없었다. 어쩐지 나 답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눈에 띄는 드레스가 있었다. 지방시의 심플한 블랙 롱 드레스였다.    


‘오드리 헵번의 드레스와 비슷하네. 티파니에서 아침을 에서 입었던. 그래... 어차피 파티도 코스프레라고 생각하자. 이번 콘셉트는 오드리 헵번으로 가는 거야!’     


내가 지방시의 드레스를 고르자 에밀리는 급하게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나랑 통했던 건지 그녀는 진주 목걸이를 공수하여 걸어주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에밀리와 함께 하이파이브를 했다. 마치 프로젝트를 함께 끝낸 팀 동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완벽해요. 아름다워요. 정말 잘 어울리네요. 현수씨 몸이 너무 예쁘고 glamorous 한데요? ”    

 

그녀의 칭찬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에밀리 고마워요. 근데 영국 파티는 어떤 분위기인가요? 한국은 그런 파티문화가 없거든요.”

“음... It's terribly extravagant and boring. 여자들은 옷이나 보석 뽐내기. 남자들은 돈 자랑. 별거 없어요. 부자들이 더 유치한 것 같아요. 현수씨, 혹시 발레 좋아해요? 오늘 발레 공연이 있어요. 마크 아버지가 발레를 좋아하시거든요. 마크의 어머니가 발레리나였단 건 알고 계시죠? ”

“그래요? 전... 몰랐어요.”     


발레 공연이 있다고 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현수는 어릴 때부터 발레에 재능이 있어 중학교까지 발레를 배웠지만, 가정 형편상 전공을 할 수는 없었다. 선생님은 재능이 있는데 아쉽다며 안타까워하셨다. 취직을 하자마자 바로 국립 발레단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발레 수업을 듣는 것으로 갈증을 해결했다. 좋아하는 발레를 그만두고 억지로 다니는 회사생활은 끔찍했다. 가끔은 나 자신이 향기가 나지 않는 그르누이 같이 느껴졌다. 내가 향수를 좋아하게 된 것도 점점 무색무취한 존재가 되어 가는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루 종일 돌아다녔더니 다리가 아팠다. 에밀리와 난 함께 여유로운 오후를 즐기기로 했다. 그녀가 자주 가는 카페로 안내했다.


“이게 그 유명한 영국의 유명한 애프터눈 티타임 이군요...” 


그녀는 웃으며 디저트와 티를 주문했다.


“와... 너무 예뻐요...!!”     


3단으로 올려진 트레이에 다양한 쿠키와 알록달록한 컵케이크, 달콤한 딸기 생크림 케이크까지... 먹기에 아까울 만큼 예뻤다. 게다가 홍차의 고장인 영국이라 그런지 밀크티는 홍차의 쌉싸름한 향이 더 깊고 달콤했다. 사진을 찍어 바로 인스타에 올렸다. 지수와 민이 실시간으로 댓글을 달았다.     


  jisoo_jjang와 ~ 애프터눈 티... 네가 진짜 영국에 간 게 맞는구나!! 완전 부럽... #애프터눈 티 #애인과 휴가 #영국

  min_prince 맛. 있. 게. 따! 앞에는 니 남자 친구가 있겠지? 아유... 꼴배기 싫어...

#남자친구랑 휴가 #질투난다   

  

친구들의 반응에 웃음이 나왔다.     


‘얘들아 다음엔 꼭 같이 오자...’


집으로 돌아가자 구매했던 제품들이 도착해 있었다. 한 직원이 진주 목걸이가 든 상자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주얼리는 워낙 고가라 구매하지 않고 대여하기로 했다. 그때 마크에게 전화가 왔다.


“현수, 미안하지만 난 오늘 파티장으로 바로 가야 할 것 같아. I'm really sorry... 차를 보낼 테니 혼자 올 수 있겠어? 에밀리도 같이 오면 돼. ”

“아잉. 너무 해요. 휴간데 왜 그리 바쁜 거예요. 알았어요. 할 수 없죠 뭐.”

“Sorry again. See you later.”     


메이크업을 하고 옷을 입고 나자 마크가 보내준 차가 도착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지금 내가 왜 여기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 파티 준비하느라 소중한 하루를 다 써버렸다.

 

‘황금 같은 휴가인데 난 왜 여기 있는 걸까...’


하지만 마크를 생각하며 이해해 주기로 했다. 혹시 오늘을 계기로 그와 아버지의 관계가 나아질 수도 있을지 모르니...

     

“현수, 이런 파티 처음이라 긴장되죠?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요. You are absolutely stunning, ok? 원래 자신감이 최고의 주얼리예요.”

“알았어요. 에밀리... 그래도 에밀리가 옆에 있으니 맘이 좀 놓여요...”     


드디어 파티장에 도착했다. 벤틀리, 롤스로이스, 람보르기니... 내가 아는 슈퍼카는 다 그곳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차에서 내리자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로 구성된 3중주의 연주 소리가 은은하게 들렸다. 파티장은 입구부터 아름다운 꽃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 아름다운 여신의 조각상이 있는 분수에서는 시원한 분수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공작새 복장을 한 무희들이 우아한 춤을 추며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파티에 참가한 사람들은 다들 패션쇼에서 입을 법한 명품 꾸뛰르 의상을 입고 있었다. 도대체 그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 화려한 파티를 열 수 있을까? 내가 회사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을 때 이 사람들은 이런 생활을 하고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사람들은 낯선 모습의 나를 흘끔거리며 쳐다보다 서로 소곤댔다. 몹시 불편했다. 어쩐지 난 그곳엔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 같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마크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 마크..!”     


그가 돌아보았다. 날 본 순간 그는 흠칫 놀란 것 같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한동안 날 바라보았다.   

  

“뭐야. 나한테 반했나 봐.”

“You are so beautiful tonight.”     


그는 내 손을 잡고 사람들을 소개해주었다. 다들 영국 왕자님이나 공주님 같은 외모의 사람들이었다. 영어 때문에 깊은 이야기를 하기 힘들었지만 옆에서 에밀리가 열심히 통역해 주었다. 대부분 옥스브리지(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교) 출신이었다. 하지만 도도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생각보다 사람들이 거만하지 않고 순수해 보였다. 다들 진심으로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한 사람만 빼고는... 그는 마크의 옥스퍼드 동문, 윌리엄 터너였다. 마크는 그를 지나치려 했지만 그가 먼저 말을 건넸다.     


“Wow, I never imagined that Mark would date an Asian woman again!”

“Jesus you really look like her.”     


통역을 거치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마크의 친구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again? look like her? 도대체 무슨 말일까? 마크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윌리엄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윌리엄은 깜짝 놀란 채 자리를 피했다.     


“ 현수 신경 쓰지 마, 미안, 저 녀석은 상대할 가치가 없는 놈이야...”     


마크는 무시하라고 했지만 난 그의 말을 지나칠 수 없었다. 예전부터 느낀 점이지만 날 처음 볼 때마다 마크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왠지 계속해서 맘에 걸렸다. 날 처음 본 순간 흠칫 놀라는 것 같고 심지어 오늘은 내가 누구와 닮았다고 하니 점점 궁금해졌다. 도대체 누구지? 마크에게 물어볼까 망설였지만 필요하면 그가 얘기하리라 믿고 잊기로 했다. 드디어 맨 앞자리에 앉아 있는 마크의 아버지에게 가서 인사를 나누었다.   

  

“ Happy birthday Mr.Anderson.”

“ Thank you for coming.”      


그는 잠시 눈길을 주었지만 다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살짝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해하기로 했다. 옆자리에 앉은 마크의 형에게도 인사를 했다. 마크는 형에게 자랑스러운 듯 내 어깨를 감싸고 이야기했다.     


“ This is My girlfriend... Hyun soo ”

“ It's nice to meet you. I've already heard a lot about you. haha ”    

 

그는 따뜻한 미소로 나를 반겨주었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는 바로 예전에 우리 회사와의 계약을 위해 회사를 방문했던 앤더슨 모바일의 CEO였다.     


‘세상에... 그럼 마크의 아버지가 앤더슨 그룹 회장이고 마크가 앤더슨 그룹의 둘째 아들이었단 말이야?’      


사장님과 서명을 교환하던 그가 내 남자 친구의 형이라니. 도무지 현실 같지가 않았다. 마크는 엄청난 갑부였구나.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두근거렸다.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즈음에 다행히도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되었고 드디어 기다렸던 발레 공연이 시작되었다.


작품은 백조의 호수였다. 프로그램을 보니 전체 공연이 아닌 하이라이트 부분만 선보이는 공연이었다. 마음은 복잡했지만 오랜만의 발레 공연에 한껏 들떠 잠시 잊어버리기로 했다. 오데트 역의 발레리나가 나와 지크프리트 역의 남자 배우와 공연을 선보였다. 백조의 호수는 1막의 오데트와 2막의 오딜을 한 명의 무용수가 연기 변신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고난도의 기술과 연기가 필요했다. 차이코프스키의 선율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다. 백조의 호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도 공연을 함께하는 듯 몰입하였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어 있을 때였다. 여자 배우가 백조의 호수의 하이라이트인 오딜(흑조)의 32회전(푸에테)을 시작했다. 기대감을 가지고 감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15바퀴를 남기고 그만 발을 헛디뎌 쓰러지고 말았다. 음악이 멈추고 주위가 웅성거렸다. 배우는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발목을 삔듯했다. 마치 내일인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대로 공연이 미완성으로 마무리되게 할 수는 없었다.


‘헉... 어떻게 하지? 근데 내가 무슨 상관이야. 알아서 하겠지. 아냐! 백조의 호수의 오딜이 이렇게 끝나선 안되지.’    


난 무슨 용기에서인지 벌떡 일어서서 무대 감독에게 가서 내가 마무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물론 그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다시 한번 날 믿어달라고 간곡히 이야기했다. 그는 고민하는 듯하다가 OK 사인을 주었다. 무대 뒤에서 재빨리 의상을 갈아입고 무대에 섰다. 십여 년 만의 무대였다. 막상 무대에 올라서자 긴장되기 시작했다.


‘내가 미쳤지. 내가 지금 왜 무대에 있는 거지? 안무는 알고 있지만. 몸도 풀지 않고 15회전을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이젠 어쩔 수 없지... 스스로를 믿는 수밖에!’


음악이 다시 시작되었다. 길게 숨을 한번 내쉰 후 차분하게 그러나 열정적으로 턴을 하기 시작했다. 턴을 한번 할 때마다 내가 발레에 열정을 바쳤던 시절이 하나씩 오버랩되었다. 그 순간, 난 깨달았다.

 

‘ 난 여전히 춤을 사랑하고 있었구나!! 그동안 내 속에 꼭꼭 눌러 왔었어. 이 마음을... 바보같이!! ’


“1,2,3,4... ”


어느새 사람들이 턴을 카운트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15번째 턴을 하는 순간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쳤다. 떨리는 마음으로 나머지 안무를 마무리하고 관객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Bravo!!” 


모두가 환호했다.


“와!! 내가 해냈다!! 안 믿겨!!”


너무 벅차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기립한 사람 중에는 마크의 아버지도 있었다. 그의 눈엔 눈물이 글썽였다. 사람들의 환호 속에 무대를 마치고 다시 의상을 갈아입고 자리로 돌아왔다. 공연감독은 날 향해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마크가 흥분한 얼굴로 내 곁으로 다가왔다.   

  

“Wow... you really surprise me. Absolutely fabulous performance. I can believe it ”     


처음 보는 그의 모습이 귀여워 웃으며 말했다.     


“I know. 너희 아버지 생일을 망치게 되는 건 싫었거든. 물론 발레 공연도. 내가 생각해도 어떤 용기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어.. 나처럼 shy 한 성격에... 만약 몸이 생각대로 안됐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해. 그런데... 기억하고 있었어. 내 몸이!”     


그때 마크의 아버지가 나를 보며 다가왔다. 혹시나 내 맘대로 공연에 끼어든 것에 언짢아 하진 않았는지 걱정되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Young lady, You have a real knack for surprising people.”

내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그가 하는 말이 칭찬인지 비꼬는 것인지 도무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Bloody hell! You made me cry after a long time. It was like Mark's mother performing. Absolutely brilliant! Thanks. ”  


그는 상기된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휴, 맘에 드셨구나! 다행이다.’


“Thank you for liking it. That was my birthday present.”     


앤더슨 씨의 반응을 듣자 에밀리와 나는 하이파이브를 했다.     


“현수 씨가 오늘의 주인공이네요. 축하해요!”     


많은 사람들이 내게 와서 인사를 건네주었다. 그곳의 공기는 내가 차에서 처음 내렸을 때와는 정반대로 바뀌었다. 공연을 마치고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순간, 내 속에 잠자고 있는 무엇인가가 깨어난 느낌이 들었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솟아올랐다.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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