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경영하는 금강경season4(30.구경무아분18)

보살은 그 존재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하나로 일치되어 돌아간다.

by 하이붓다 지공선사

수보리 약보살 통달무아법자 여래 설명 진시보살

(須菩提 若菩薩 通達無我法者 如來 說名 眞是菩薩)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무아의 법을 통달한 자이면 여래는 이를 참다운 보살이라 이름하나니라


석가모니부처님은 진리를 진리로써 가르쳐주신 분이다. 진리를 말하는 것도 진리이니 불교가 어렵다는 하소연은 어느 정도 이해된다.


석가모니부처님은 법문을 한 번 시작하면 아주 뿌리를 뽑는 분 같다. 눈곱만큼이라도 우리들이 어긋난 생각을 가질까 봐 추상같이 엄하게 결론을 단호하게 지어주신다. 그래서 이 지구 역사상 그 방대한 법문이 나온 것이니라. 실제로 우리 중생심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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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2,500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우리가 여전히 모시고 있고 이 지구에는 영원한 분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시대에는 동서양 가릴 것이 없이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께 귀의하고 있다.


여기서 보살이란 무아(無我)의 법을 통달한 자라고 한마디로 결론 내려주신다.


자기 밖의 어떤 일이나 분야에 통달하면 그 분야의 대가(大家)가 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통달하면 보살이 되는 법이다.


통달(通達)이라고 하면 그 어떤 것에도 걸리지 않고 원만(圓滿)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나 법에 대해서나 모두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걸린다는 것은 자기의 상(相)에서 나온 의식에 자기 자신을 매몰시키는 것을 뜻하고, 법에 대해서 걸린다는 것은 법이 이렇니 저렇니 하고 따지는 법상(法相)에 걸린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아는 것과 행(行)하는 것이 항상 일치해 버리는 지행일치(知行一致)가 되는 것인데, 안다는 것은 곧 자기의 본래면목을 아는 것이고, 행(行)한다는 것은 자기의 본래면목의 뜻에 따라 행(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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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보살은 존재(存在) 그 자체와, 아는 것과, 행(行), 이 삼자가 늘 하나로 일치되어 돌아간다.


만일 여기에 어느 하나라도 티끌만큼의 어긋남이 있으면 보살이 아닌 것이다.


어떤가?


그대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보살이 되었다고 함부로 장담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 세 가지가 항상, 그리고 완벽하게, 그리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일치해야만 된다. 스스로를 속이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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