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조차 중생심이다.
있는 바 일체중생의 종류인 난생, 태생, 습생, 화생, 유색, 무색, 유상, 무상, 비유상비무상을 내가 모두 무여열반에 들게 해서 그들을 다 멸도하리라
삼계의 모든 중생 부류들을 나열했는데, 이 모든 중생이 바로 나 안에 있음을 또한 알아야 한다.
이른바 나는 모든 중생의 모습을 한 몸에 구현하고 있으며, 모든 중생 또한 나의 또 다른 모습이라.
물질로 보이는 생명만 따져봐도 내 몸속에 살고 있는 모든 세균, 박테리아, 세포 하나하나, 정자와 난자 등은 각자 의식을 가진 개별 존재로서 이들이 뭉쳐 나를 이루고 이 가운데 내 영혼이 모든 의식과 몸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모든 동물의 의식과 탄생 모습이 나에게서 나타난다. 이가기 수정되어 인간의 몸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보면 그렇지 않은가?
또한 전생의 삶의 경험과 의식이 고스란히 내 영혼의 한 부분이 되어 있다.
천수경에 보면 자성중생성불도(自性衆生成佛道)라는 표현이 있다. 나 안의 모든 중생들은 나와 더불어 해탈한다는 뜻인데, 다양한 상과 의식을 가진 나 자신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번뇌와 상(相)은 만 가지 차별이 있으나 모두 일컬어 중생심이요, 또한 모두가 각자 불성이 있으니 여래께서 열반묘심이 있는 것을 가리켜 보임으로써 대자비로 널리 교화하신다.
아개영입은 삼계의 구지중생(九地衆生)들을 모두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무여란 습기, 번뇌가 없음이고, 열반이란 일체 습기를 모두 멸해서 영원히 번뇌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된 상태를 말한다.
멸도란 그렇게 무여열반이 되어서 마침내 생사 대해를 건너게 되는 것이다.
이상하다? 보살마하살이 중생심을 항복받는 데 있어서 제일 처음 언급하신 것이 바로 모든 중생들을 열반해탈로 들이겠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항복받는 핵심비결이 나온다.
내가 나 자신의 마음을 항복받고 싶다거나 다스리고 싶다거나 하는 등의 내 마음에 대한 그 어떤 생각과 의식도 내 마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기존의 내 마음을 더욱 강하게 만들게 된다.
즉, 내 마음에 대해 생각하는 그 순간 내 마음에 사로 잡히고 마는 중생의 악순환의 마음을 잘 이해해야 한다.
중생심을 항복받고 싶다는 그 마음조차 이미 중생심이고 또 다른 중생심을 내는 것밖에 안된다.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조차 중생심일뿐 불심이 아니다. 자기가 부처라면 부처님을 따로 생각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는 결코 자기 자신의 중생심을 항복받고 거기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기존의 내 마음을 옆으로 제쳐두고 타인을 향한 마음을 내라는 것이다.
우선 나보다 남을 우선 생각하라는 것이다. 나 자신을 붙잡고 늘어지면 온갖 걱정을 비롯한 번뇌망상만 쌓이게 되고 또 수행한다고 해도 '뭘 얻어야 한다' 또는 '뭘 버려야 한다', '내 경지가 어느 정도일까' 하는 법상과 아상만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자기의 중생심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슬며시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자기 존재가 비로소 중생심을 완전히 항복받고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해서 나중에 나오는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상태가 된다.
왜 그렇게 될까?
이것은 바로 본래부터 자타가 불이(不二)인 탓이다.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타인을 구제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구제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기 자신만 행복하게 되기 위해 자기 마음을 항복받으려고 하면 불가능하고, 더욱 불행해지고 자기의 중생심에 깊이 빠지게 된다.
그 이유는 자기 존재를 한 개체에 스스로 한정시키고 좁은 우물에 가두는 탓이다.
보다 많은 타인을 마음에 품을수록 자기의 그릇이 커지게 되므로 넓고 밝은 바깥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좁고 어두운 우물 속에서 행복은 없다. 그 속에서 자기 중생심을 항복받아봐야 여전히 좁은 우물 속이다.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이 모두 빠지는 함정이 바로 자기 마음을 염두에 두고 자기 스스로 어떻게 해보려는 것이다.
중생심을 항복시키는 것은 중생심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지 그것을 다스리고 억누르고 없애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는 힘만 빠지고 더욱 악화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석가모니불께서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중생심으로부터 빠져나와야 비로소 중생심을 항복받을 수 있다고 하시는 것이다.
나 자신을 봐도 늘 머릿속에 기도하는 사람들로 꽉 채워놓고 있다 보니 나에게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지 도대체 알지도 못하겠고, 또 나를 걱정할 시간도 없이 하루하루 잘 흘러간다.
그러니 이상은 당연히 부처님의 맞는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