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를 경영하는 금강경 season1(11.대승정종분3)

우선, 부처님께 잘 귀의하여 보기 드문 훌륭한 중생이 되자.

여시멸도 무량무수무변중생 실무중생 득멸도자

(如是滅度 無量無數邊衆生 實無衆生 得滅度者)


이와 같이 한량없고 셀 수 없고 가없는 중생을 멸도하되 실로는 멸도를 얻은 중생은 없느니라


'중생이 영원하므로 부처도 영원하다', '중생이 무한하므로 부처도 무한하다', '중생이 있으므로 부처도 있다'는 표현이 있다.


중생은 상(相)을 가진 부처요, 부처는 상이 없는 중생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게 공부하러 열심히 오는 신도 한 분이 이렇게 물으셨다.


'선사님은 그동안 중생들을 몇 명이나 구제하셨어요?"


무엇을 두고 구제한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런 것 몰라!" 하면서 손을 내저었다.

nature-outdoor-rock-silhouette-light-cloud-1026034-pxhere.com.jpg

나는 기도해서 상대방이 잘 되는 것을 보고 기쁨이나 보람을 느끼는 그런 일은 없다. 나는 그냥 내 하는 일을 할 뿐이고 상대방은 그냥 잘되어나갈 뿐이다. 진리 속에 풍덩 빠뜨려 놓으면 모든 것이 순리대로 또 나름대로 공부하는 대로 되어가는 것인데 내가 뭐 따로 기쁨이나 보람이 있겠는가? 부처님과 진리가 하는 일이지, 내가 따로 하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보람 같은 것은 느낄 나 자신은 이미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그럼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나도 모른다.


그럼 부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렇게 애를 쓰며 우리들을 구제하니 우리들은 멸도를 얻는 것인데, 왜 멸도를 얻는 것이 실로 없다고 하는 것인가?


이는 멸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멸도를 얻는(得)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멸도는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망심(妄心)을 여의는 것이 곧 멸도요 해탈이요, 열반인데, 자기가 망심을 여의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지, 어떤 것을 주고 얻는 인위적인 것이 보태져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곧 천지대도의 법이 그렇게 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것이 실(實)이다.


그러면 왜 누구나 스스로 멸도하지 못하고 보살의 제도(濟道)를 받아야 하는가? 우리 중생이 스스로 못하게 되어 있으니 보살에게 중생들을 멸도시켜주라고 말씀하시는 것 아닌가?


그것은 중생의 내면에 바로 선과 악이 있기 때문이다.


내면의 선은 힘과 지혜가 부족하고 악과 혼재되어 불순물이 가득한 상대선(相對善)에 불과하고, 내면의 악은 결국은 외부의 악과 마주치게 되어 있고 또 끊임없이 외부의 악을 끌어들여 고통이 잠시도 쉬지 못하고 늘 마음이 허덕거리기 때문이다. 내면의 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분류한 것이 탐진치의 삼독심이자 번뇌망상이란 것이다.

person-light-woman-sunset-wave-contemplation-930123-pxhere.com.jpg

그러므로 우리는 보살의 불심을 접하고 받아들여 내면의 상대선을 순수한 절대선으로 키워가고 내면의 악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보살이 중생들을 멸도하되 멸도를 얻은 중생이 없다는 것은 보살은 처음부터 중생이 보살과 똑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고 보기 때문이다. 보살의 관점에서는 단지 중생이 보살이라는 본래 모습을 찾고 회복했을 뿐, 보살이 그 본래 모습을 중생에게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중생은 자기가 잘나서 본래 모습을 찾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본래는 한없이 잘난 이 우주에서 제일가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잘 단정하여 가꾸어 주는 보살이 없으면 영원히 거지로 살아갈 테이니, 이는 궁 밖을 나와 자기가 왕자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거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거지라는 망심을 깨부수고 다시 궁궐로 돌려보내서 왕이 되도록 해주는 것과 같다. 자기의 본래 신분으로 돌아왔지만 인도자가 없으면 본래 신분으로 돌아올 기약이 영영 없는 상태이니 사실상 이 거지인 자기에게 왕자의 신분을 새로 준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렇게 멸도되는 것을 가지고 우리는 부처님께 '귀의(歸依)'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귀의라는 것은 불보살님을 비롯한 삼보(三寶)에게 잘 의지하여 마침내 자성불로 회귀한다는 뜻이다. 이른바 보살님의 제도를 잘 받아들여 자기의 본래 모습인 불(佛)로 되는 것이다.


부처님에게 의지만 하면 그냥 믿는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고 자기의 주체성을 세울 수 없고 항상 곤궁한 거지신세를 면할 수 없다.

pexels-cottonbro-studio-7181794.jpg

반면 자기 자신을 내세워 부처님을 무시하고 자성불로 회귀만 꿈꾼다면 이것 역시 불가능하고 늘 왕자를 꿈꾸는 처량한 거지신세와 같다고 할 것이다.


귀(歸)와 의(依)가 잘 균형을 이루고 서로 상승작용을 하도록 하여 앞으로 잘 나아가야 한다.


우선 부처님께 잘 귀의하는 보기 드문 훌륭한 중생이 되어보자.


거지일 때는 거지노릇을 잘하고 왕자일 때는 왕자노릇 잘하는 것이 그것이다.


거지가 어설프게 왕자노릇을 하려거나 왕자가 거지노릇을 하려다가는 신세가 나아지기 어렵다.




keyword
이전 11화나를 경영하는 금강경 season1(10.대승정종분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