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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경영하는 금강경 season1(12.대승정종분4)

우리는 누더기를 입고 있는 보살이다.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 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즉비보살

(何以故 須菩提 若菩薩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卽非菩薩)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니라


보살과 중생의 경계를 가르는 것이 곧 상(相, shape)이요, 이 상을 네 가지로 나눈 것이 사상이다.


이 상은 본래 부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고 중립적인 것인데, 여기에 마음이 달라붙음으로써 중생의 모습을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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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은 근본적으로 영혼의 의식을 주로 해서 두뇌의식까지 포괄하여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아상(我相)이란 무아(無我)를 부정하고 '나라는 것이 있다'는 의식이다. 자기 영혼조차 깨부숴야 할 중생의식인데 자기의 무엇이 있을까? 오로지 불성만이 존재함을 모르는 것이다. 두뇌의식으로서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또는 가지지 못한 물질이나 어떤 가치 등에 의해 형성된 의식을 자기 안에 담아두고 있는 것을 말한다. 자기주장이 강할 때도 아상이 강하다는 표현을 쓴다.


인상(人相)이란 아상에서 비롯되어 나와 남이 따로 존재하고 다르다는 차별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근본의식이 대우주와 하나 되어 있는 일체 평등성을 모르고 차별성을 강조하는 것인데, 타인과는 비교의식이 대표적이다.


중생상(衆生相)이란 몸이 좋아하는 것만을 따르는 의식이다. 당위와 높은 가치를 따르지 못하고 눈앞의 욕망에 항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자기는 부처나 신은 영원히 될 수 없고 그것은 남이나 성인의 일이며, 자기의 일이 아니니 중생이라는 강한 의식을 갖고 있는 것도 포함된다. 기독교에서는 나는 '어린 양' 의식이 대표적이다.


수자상(壽者相)이란 영혼은 영원하고 불멸한다는 잘못된 의식이다. 또 오래오래 천년만년 잘 살고 싶은 욕망을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래 살면서 윤회하게 되는 씨앗만 키우니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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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사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라고 하는데 왜일까?


중생을 구제한다는 '내가 있다'는 의식이 있는 것이 곧 아상이고, 아무리 타인에게 좋고 구제를 해주어도 나와 타인을 따로 보는 안목이 있다면 곧 인상이라. 여기에 이어 삼악도의 고통을 벗어나 좋은 곳에 나기만 바라니 중생상이고, 거기서 영원히 살기를 바라니 곧 수자상이다.


중생을 모두 무여열반에 들게 하되 자기 자신이 상을 내지 않게 되어 있어야 하니 보살 되기 참 어렵고 보살마하살이 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자. 우리는 이미 보살이다. 다만 누더기를 걸쳐 입고 있어서 그렇지.


여기서 마음을 항복받는 것에 대한 수보리존자의 질문에 여래께서 1차적인 핵심법문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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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중생구제라는 부분을 조금 깊이 들어가 보자.


중생구제는 나와 상대가 같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문제이므로 혼자 수행하는 것과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 보살마하살로서 중생구제행을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필수 조건들이 모두 갖추어져야 여래의 법문을 따를 수 있게 되고 원만한 중생구제행이 된다.


1. 내 마음의 너의 마음이 아니다(我心非汝心)


상대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려는 내 마음은 보살의 마음이지만 상대의 마음은 중생의 마음이다.


그런데 불이니 '한마음'이니 하면서 내 마음이 상대의 마음과 마냥 같은 줄로 생각하고 어설프게 상대를 도와주려고 하면 나 자신이 상대의 중생심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


우선 상대의 생각과 마음, 행동과 삶의 방식 등 상대의 존재 전체를 절대적으로 존중해야만 한다.


상대가 어리석어서 또는 힘이 모자라서 또는 못난 사람이라서 등 동정심을 가지고 대하는 것은 상대의 영혼과 자성불을 깔보는 것이 되어 잠재적 분노를 사게 된다. 상대를 존중한다는 것은 곧 인과법과 인연법을 존중한다는 것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대에게 생기는 모든 고통도 여기에 따라 일어나기 때문이다. 상대를 무시하고 못난 사람으로 보는 것은 법을 무시하는 것이 되어 구제해 주려는 마음 자체가 벌써 중생심이 되어 나 자신을 타락시킨다.


상대에 대한 절대 존중은 바로 자비심을 키우는 마음바탕이 되고 또한 상대를 그대로 봄으로써 구제하기에 좋은 방편을 알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바로 묘관찰지(妙觀察智)를 발휘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중생구제행을 하는 데 있어서 나 자신이 보살심을 갖출 수 있게 된다.


2. 상대의 마음이 곧 나의 마음이다(汝心卽我心)


상대에 대한 절대 존중을 바탕으로 상대의 중생심을 잘 살펴 묘관찰지로써 그에 맞는 방편을 갖추는 데 있어서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의식을 갖고 있으면 또한 보살의 중생구제행이 되지 못한다.


보살은 상대의 마음을 내 마음에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바로 대비심이다.


대비심을 가지므로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임으로써 나 자신의 마음이 점차 커지고 넓어지고 기존의 내 마음은 점점 축소되어 급기야 사라지게 된다. 내 그릇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에게 내 마음이 올바른 마음이니 받아들이라는 식으로 상대에게 들이밀게 되면 어긋나게 된다. 중생심은 보살심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보살심은 중생심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3. 내 마음은 비어있는 마음이로다(我心卽空心)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내 마음이 비어있지 못하면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이더라도 내 속에서 내 마음과 충돌을 일으켜 크나큰 스트레스로 작용하게 되어 나 자신이 점점 힘들어지고 급기야 다른 큰 문제를 일으킨다.


그래서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내 마음이 텅 비어있지 못하다면 나 자신이 중생으로 전락해갈 가능성이 커지고 중생구제행을 하는 데 있어서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그러므로 청정심을 갖추어가는 것은 중생구제행을 위해 필수적인 자격이 된다. 이것은 이른바 보리심인 것이다.


4. 상대의 마음과 내 마음과 부처의 마음이 하나로다(我汝佛一心)


상대의 중생심을 텅 비어있는 내 마음에 받아들여 이 두 마음을 부처의 마음과 이어지게 한다.


이렇게 불심을 중심으로 한마음이 되어 좋은 방편을 행하면 원만한 중생구제가 되고 나 자신의 마음도 항복받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상대에 대한 절대존중을 근본으로 지혜롭게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자비심과 청정심을 가지고 좋은 방편을 행한다면 그대는 바로 보살마하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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