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의 참된 공덕을 얻는 방법은?
또한 수보리야, 보살은 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소리와 향기와 미각과 촉각과 현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이미 보살이고 부처니 중생이 아니다.
우리가 보시를 할 때 벌써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육근으로 상대방을 보고 보시를 하게 되니 색성향미촉법의 경계에 머물지 않을 수 없다. 즉, 아무리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해도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현실적으로 어떻게 보시를 해야 하는가?
1. 무엇을 위해서 보시한다는 보시의 대의명분을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신앙인들은 흔히 자기의 종교나 그 가르침을 내세우며 보시를 한다. 그래서 법에 머물지 마라고 하는 것이다. 종교를 내세우며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것은 위선이고 이 때는 사랑과 자비에 불순물이 끼는 것이다. 종교는 다만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일 뿐이다.
2. 상대방을 불쌍하게 보면 안 된다.
이것은 내가 너보다 나으니 도와준다는 우월의식과 차별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으로서 상대방이 비록 처지가 딱해서 도움을 받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기가 무시당한다는 의식을 느낌으로써 분노심을 가지게 만든다. 그래서 이런 동정을 하면 도와주고 배신당하는 것이다.
3. 보시의 과보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보시를 하니 내 영혼이 밝아질 것이라거나 복덕이 쌓일 것이라거나 부처님이 도와줄 것이라거나 하는 것은 모두 현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4.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이렇게 도와주니 상대방이 잘 되겠지 하는 기대는 묘하게 상대방에게 부담을 준다. 그냥 보시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을 하는 것일 뿐 상대방이 그 뒤에 어떻게 하는가는 상대방의 일이지 내 일이 아닌 까닭이다.
5. 악인에게는 보시하지 말아야 한다.
육경(六境)에 머물지 말고 보시하라는 것이 선악을 무시하고 악인에게도 보시하라는 뜻이 아니고 그 이면도 잘 살펴서 자리이타(自利利他)라는 좋은 결과를 낳도록 하라는 것이다. 보시를 할 때는 분명히 사람을 가려서 해야 한다. 악인에게 보시하면 오히려 마장이 끼게 된다.
6. 타인의 탐욕을 채워주면 안 된다.
자기가 조금만 손해 보면 어려운 상황을 얼마든지 쉽게 넘길 수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또한 자기가 욕심만 조금 줄이면 별로 고통스럽지 않게 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데 그 조그마한 손해도 안 보려고 도와달라며 상대방이 곤란하게 되는 것을 외면하고 손을 내미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이런 사람에게 보시한다면 보시가 아니라 탐욕을 충족시켜 주는 것밖에 안된다. 그리고 그 보시는 반드시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7. 보시는 다차원이다.
내가 경제적 또는 정신적으로 보시를 못해줄 상황에 처해 있을 때에도 훌륭한 보시를 많이 할 수 있다. 공의 차원에서 보시하는 것이다. 부처님께 간절하게 기도를 해준다거나 따뜻한 말 한마디로 격려해 준다거나 자기 대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준다거나 하는 것 등이 모두 보이지 않는 영적 차원에서 해주는 아주 훌륭한 보시이다. 이것은 다양한 효과를 가져다주는 보시가 될 수 있다. 색상에 머물지 말라는 것은 오히려 이런 것을 강조하는 면이 있다.
8.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보시하라
색성향미촉법에 머무르지 말라는 것은 내 마음이 상대방과 그 상황에 같이 끌려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같이 다급해한다거나 전후사정을 충분히 파악하지 않는다거나 상대방의 말만 듣는다거나 하는 등, 이런 상태에서 보시하면 자칫 자해타해가 되기 쉽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상황을 전체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하여 지혜롭게 잘 보시하여 도움을 줄 수 있게 된다.
9. 희생을 각오하고 보시하라
흔히 보시의 공덕만 생각하지만 실제로 보시하고 나서 그로 인해 예기치 못한 손해가 많이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상대방을 마음에 품었을 때는 상대방에게 있는 각종 유무형의 장애와 문제점들로 인해 나 자신이 크게 피해가 입을 것도 기꺼이 감수할 각오를 하고 보시하는 것이다.
10. 색성향미촉법을 떠나지 말라
색성향미촉법에 머무르지 말고 보시를 하라고 하니 또 그것을 떠나고 멀리하려고 애쓰는 중생심의 치우친 견해를 갖는다. 보시를 통해 선인연을 키우고 마음과 마음을 하나로 이루어가는 것 자체가 이 세계를 불국토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으며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면 얼마나 행복해질 것인가? 머무르지 않고 떠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보시는 상대방이 필요할 때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그 필요한 부분을 그냥 채워주는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 가운데 필요한 부분을 가자고 말이다.
모자라면 채워주고 넘치면 덜어내는 것이 천지의 순리에 맞는 것이므로 순리에 따르니 이런 보시는 개별적인 묘행인 동시에 보시행 자체가 법계에 두루 회향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무한한 공덕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