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공선사 Jun 07. 2024

나를 경영하는 금강경 season5(5.일체동관분5)

자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육안(肉眼)에 국한시켜 스스로 제약시키지 말자.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유불안부 여시 세존 여래 유불안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有佛眼不 如是 世尊 如來 有佛眼)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불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불안이 있습니다.


불안(佛眼)이란 말 그대로 부처님의 눈이다.


이 대우주의 모든 질서와 무질서 내지 혼돈, 즉 카오스까지 모두 보는 안목이다.


이른바 이 대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일체의 것들이 모두 부처님의 손바닥 안에 있게 되는 눈으로, 오직 여래만이 가지게 된다.


그런데, 실상은 아라한의 법안이 중생의 눈으로 볼 때 그 눈을 불안이라고 한다. 사실 법안은 신의 눈인데, 부처는 신과 생명의 결합된 모습을 갖춘다. 그러므로 부처님 눈인 불안은 청정한 영혼의 눈이 생명체의 눈동자를 통해 나오는 것이니, 일체를 하나의 눈(5안- 육안, 천안, 혜안, 법안, 불안-이 분별되지 않음)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생들은 부처님이 자기들과 똑같이 육안으로 보는 것이라는 착각을 해서 부처님 앞에서 고집 피우며 함부로 하기도 한다.


불안(佛眼)은 앞의 네 가지 눈을 모두 포섭하고 있는데, 이전의 눈이 올바른 가치를 발휘하게 되기 위해서는 뒷눈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져야 됨을 알 수 있다.


육안(肉眼)이 제 가치를 가지려면 천안이 갖추어져야 되고, 천안(天眼)이 제 가치를 가지려면 혜안이 갖추어져야 되고, 혜안(慧眼)이 제 가치를 가지려면 법안이 갖추어져야 되고 법안(法眼)이 제 가치를 발휘하려면 불안이 갖추어져야 된다.


그러므로 여래(如來)가 되어야 무엇을 보든 어떻게 보든 무슨 일을 하든 안 하든 티끌만큼의 착오도 없게 되는 법이다. 이른바 신이 하는 일인 것이다.


여래께서 이 오안(五眼)을 언급하신 이유는, 바로 우리에게도 본래 이 오안이 모두 갖추어져 있음을 알려주시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 오안을 원만하게 구족하기 위해서는 나머지 앞의 네 눈을 집착하지 말고 하나하나 얻어가면서 동시에 버려가야 된다.


그런데 버리면 퇴보하거나 죽는 줄 아는 것이 번뇌망상으로 오염된 우리들의 육안이다.


특히 육안(肉眼)은 오감(五感)과 더불어 물질세계에 대응하는 안목인데, 육안만으로 살아가는 것은 동식물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낮은 차원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진실로 알고, 눈에 보이고 감각에 좋은 것만을 추구하고, 자기의 행복과 성공을 물질차원에서만 따지고,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기 존재 전체를 스스로 부정해 버리는 그런 삶을 영위하는 것을 일차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천안(天眼)부터 불안(佛眼)까지의 안목은 신통력을 가진 사람에게나 해당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육안(肉眼)에만 집착하여 살면 반드시 고(苦)를 초래하게 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진실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데, 자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육안(肉眼)에 국한시켜 스스로 제약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복(福)을 짓지 못했다거나 악업에 대한 과보를 받는다거나 하는 등 단순히 인과법이 작동하는 것과는 차원이 또 다르다.


근본적으로는 육안(肉眼)이 희망하는 것을 이루어지도록 해주는 것이 나머지 네 안목인데, 이것을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우주는 혼돈 내지 무질서의 부분도 많이 있기 때문에 인과법에 의하여 복이 없거나 화(禍)가 큰 운명으로 타고났더라도, 이런 안목들을 키움으로써 얼마든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 화를 줄이거나 미리 없앨 수 있는 법이다.

우리가 도(道)가 높아지고 이런 안목들을 구족해간다는 것은 최종적으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뜻한다. 즉 대자유(大自由)를 얻는 것이다.


육안(肉眼)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다만 제대로 얻기 위해서는 나머지 4개의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안목들이 부족한데 단지 육안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 되고 집착이 되고 망상이 되고 윤회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안목에 대해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두자.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것에 매이지 말자. 보이는 것과 그에 따른 이성과 논리, 그리고 감성과 비논리, 이 양자를 모두 넘어서 보려고 애쓰다 보면 안목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이전 04화 나를 경영하는 금강경 season5(4.일체동관분4)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