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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공선사 Jun 10. 2024

나를 경영하는 금강경 season5(6.일체동관분6)

수많은 부처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우선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수보리 어의운하 여항하중 소유사 불설 시사부 여시 세존 여래설 시사

(須菩提 於意云何 如恒河中 所有沙 佛說 是沙不 如是 世尊 如來說 是沙)


수보리 어의운하 여일항하중소유사 유여시사등항하 시제항하소유사수 불세계 여시 영위다부 심다 세존

(須菩提 於意云何 如一恒河中所有沙 有如是沙等恒河 是諸恒河所有沙數 佛世界 如是 寧爲多不 甚多 世尊)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항하 가운데 있는 모래를 부처님이 설하신 적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그 모래를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하나의 항하에 있는 모래수와 같이 이렇게 많은 항하가 있고 이 모든 항하에 있는 바 모래수만큼의 부처님 세계가 있다면 이는 얼마나 많음이 되겠느냐.


심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세계가 실제로 이렇게 많은데 우리는 왜 이 세계에 계속 머무르면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가?


그 원인은 우리 자신이 이 사바세계에 존재하게끔 되어있기 때문이다.


사바세계가 있고 나서 우리가 우리 의지에 반하게 어떤 다른 존재가 우리를 이 세게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상태가 이 사바세계에 꼭 맞게끔 되어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는 육안(肉眼)부터 혜안(慧眼)까지는 갖추어도 법안(法眼)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겪는 현상이다.


그러니 신이나 부처님이나 다른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고, 단지 나 자신을 돌아볼 뿐인 것이다.


부처님 세계가 이렇게 많은데, 이 사바세계의 동쪽은 만월(滿月) 정토인 약사유리광 여래불이 계시고, 서쪽에는 극락(極樂) 정토인 아미타불이 계시고, 남쪽에는 환희(歡喜) 정토인 보승존여래불이 계시고, 북쪽에는 무우(無優)정토인 부동존여래불이 계시고, 중앙에는 화장(華裝) 정토인 십신비로자나불이 주재하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 분들을 중심으로 부처님을 신앙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같이 계시는 서방극락을 대표적인 정토(淨土)로 받들고 있다.


이 세계들은 윤회(輪廻)가 끊어진 세계로서, 비록 깨닫지는 못해도 이 세계에 들어가면 뺑뺑이 신세를 면하고 지극한 낙(樂)을 영원히 누린다. 어떤 이유로 이 사바세계에 다시 태어나더라도 몸을 벗은 후에는 다시 원래의 부처님 국토로 복귀한다.

그러므로 극락에 나는 것을 우습게 여기면 안 된다. 흔히 선(禪)을 한다는 수행자들이 범하는 오류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조그마한 선근(善根)과 복덕(福德) 정도로는 되지 않는다고 아미타경(阿彌陀經)에서 그렇게 설법하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 수많은 부처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을까?


그 조건들을 몇 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집착이 완전히 끊어져야 한다.


부처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세계에 그 어떤 인연이나 대상에 대해서도 티끌만큼의 미련이나 한(恨)이 있어도 안된다.


생각이나 마음이 이 세계의 의식을 따지는 차원을 넘어서 있어야 한다.


2. 영혼이 밝아야 한다.  


부처님 세계는 광명(光明)의 세계이다. 어두운 영혼의 소유자는 들어갈 수 없다.


자기 영혼이 밝을수록 마음이 늘 밝고 평안하다.


3. 부처님을 신앙해야 한다.


부처님이 주재하고 계시는 곳이니, 그분을 믿고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입학허가가 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흔히 착한 일만 하면 무신론자라도 좋은 곳에 갈 수 있다고 믿고 있는데, 선악(善惡)을 따지는 인간적인 기본의식 차원만 가지고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부처님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 기껏해야 윤회하는 천상에 날 뿐이다.

4. 선근과 복덕이 심후해야 한다.


큰 복덕을 짓고, 동시에 부처님에 대한 신앙이 마음의 뿌리에 닿아 있어야 한다.


복(福)은 돈으로만 짓는 것이 아니라 무주상보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 형편에 빠듯하거나 좀 힘들 정도로 큰 보시여야만 된다. 그래야 큰 마음이 들어가고 복과 더불어 덕도 동시에 갖추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덕(德)은 그만한 고행인욕이 반드시 따라야만 되는 것이므로, 마음 편히 고생 좀 해야 된다는 것이다. 부자가 여기서 극락에 나기 어려운 이유가 있게 되는 것이다.


5. 죽음에 편안하게 임해야 한다.


죽음의 공포로 인해서 두려움이 엄습하거나 발버둥 치면 안 된다. 죽을 때 뚜렷하고 편안한 자기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사고나 병으로 인한 죽음으로 고통이 클 때 참 극락에 나기 어렵다.


중생은 죽음의 공포와 불안, 삶에 대한 미련과 회한 등이 남아 있으므로, 사후에 49재와 천도재 등을 통해 다시 한번 극락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상의 다섯 가지 조건이 모두 갖추어져야 할 기본적인 사항인데, 이 가운데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부처님을 잘 신앙하는 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에 대해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있고 또 신앙하지만 정작 자기 영혼과 마음은 부정적이고 어둡고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 세계에 가는 것은 자기 영혼이므로 자기 영혼과 마음을 밝게 만들고, 자성불(自性佛)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부처님에 대한 믿음과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극락은 마음에 있다느니 하는 등의 이런 관념적인 말을 하면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극락이 마음에 있다는 말은 극락에 날 수 있는 마음을 갖추어라는 뜻 정도로 받아야 들여야 한다. 실제로 마음에 극락을 찾고 만들고 하는 것은 번뇌망상을 완전히 소멸시키고 큰 복덕으로 가득 채워야 되는 법이다.


자성불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이유는 현실에 매여있는 현재의 모자라는 자기 모습을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인데, 그러면 상(相)에 따른 자기의식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것을 벗어나야 저 부처님 세계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부처님 세계는 바로 내 영혼의 고향이고, 또 그렇게 셀 수 없이 많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부처님 세계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이기도 하다.


부처님 세계에 나는 것은 다행히도 상대평가가 아니고 절대평가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들이 타락해도 자기 자신만큼은 타락하지 않고 잘 지키는 필연적인 이유가 성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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