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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공선사 Aug 02. 2024

나를 경영하는 금강경season6(11.불수불탐분3)

보살의 마음은 자비심이 흘러넘치고 있어 중생구제 마음을 따로 내지 않는다

수보리 백불언 세존 운하보살 불수복덕

(須菩提 白佛言 世尊 云何菩薩 不受福德)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보살이 복덕을 받지 않습니까.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는 수보리가 왜 이런 의문을 가질까?


그것은 바로 보살이라는 존재를 중생들과 따로 놓고 보기 때문이다.


즉, 우리 중생들의 관점에서 보면 분명히 우리들과 보살 또는 여래는 별개로 존재하는 분들이다.

따라서 그분들이 중생을 구제하면 우리가 착한 보시를 하는 것처럼 당연히 복덕(福德)을 받을 것인데, 그렇지 않다고 부처님께서 설하시니 의문인 것이다.


그런데 보살의 입장에서 보면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을 특별히 내어 구제하는 것도 아니고, 중생들에게 복을 주려는 마음을 특별히 내고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보살의 마음, 즉 자비심이 늘 흘러넘치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들이 그 마음을 주워 담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에게 구제 또는 구원이라는 현상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따로 중생을 구원한 것이 있으며 그러니 따로 복덕을 받을 일이 있겠는가?


아미타불(阿彌陀佛)께서 대광명(大光明)을 놓아 24시간 시방법계와 모든 중생들에게 빛을 주고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우리 중생의 문제이지, 아미타불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아미타불이 중생을 구원하는 것은 아미타불이 있고 자비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미타불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자비심덩어리이고 광명덩어리인 것이다. 그래서 따로 중생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마타불의 광명을 받아들이게 되면 부처로 화(化)하게 되건만, 여전히 삼보리의 빛을 튕겨내면서 시커먼 자기의 욕망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욕망을 벗어나는 것은 자기가 스스로 깨달아 할 바이므로 자기가 자기 자신을 구제한다는 것도 말이 된다.


그러나 그 구제 또한 아미타불의 대광명으로 인하여 가능한 것이니 아미타불이 구제한다는 것도 말이 된다.


마치 바다가 없으면 자기가 아무리 큰 배가 있어도 소용이 없는 것과 같고, 바다가 있어도 자기가 배가 없다면 바다에서 배를 타고 놀 수 없는 것과 같다.

아미타불은 바다이고, 자기 자신은 배가 된다.


만약 보살이 중생을 구제한다는 생각이 있으면서 중생을 구제한다면 분명히 큰 복덕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따로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복덕을 따로 얻는 것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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