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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경영하는 금강경 season1(18.여리실견분1)

진심을 내는 순간 자기는 부처가 되고, 탐심을 내는 순간 중생이 된다.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신상 견여래부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身相 見如來不)


불야 세존 불가이신상 득견여래

(不也 世尊 不可以身相 得見如來)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몸의 모양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못 봅니다. 세존이시여. 몸의 모양으로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앞의 분(分)까지는 마음을 어떻게 항복받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해 상(相)에 머물지 말고 중생을 멸도하여 무주상보시를 해야 한다고 설법하셨다.


여래실견분은 여래의 상에 대해 설법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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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보살의 원(願)은 여래를 보는 것이고, 마음을 항복받으면 여래가 되니 여래를 본다 함은 곧 자신이 여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여래는 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시고 그래서 여래를 보든지, 여래가 되려면 상에 머물지 않는 묘행(妙行)을 통해 마음을 항복받아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신다.


여래는 일체 모양과 형상이 없으므로 여래를 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그렇다고 허공에 대고 여래를 찾는 것도 좀 그렇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 아상(我相)을 가지고 공부하는 과정이므로 불상(佛像)을 조성하고 그 불상을 통해 여래를 접하는 것인데, 불상에 대고 절하고 기도한다고 어찌 어리석다고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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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는 무소부재(無所不在)라, 불상이 문제가 아니라 불상에 대고 진심을 낸다면 불상이 곧 여래가 되고, 탐심을 낸다면 불상이 곧 단순한 색신(色身)으로서의 불상으로 머무는데 그친다.


왜냐하면 진심을 내는 순간 자기가 부처가 되고, 탐심을 내는 순간 자기가 중생이 되기 때문이다.


여래를 본다 함은 무슨 뜻인가?


자성이 곧 청정함을 본다는 것이니 자신이 곧 대우주의 한 송이 연꽃이 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아무리 번뇌망상과 온갖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지라도 나의 깊은 내면은 실제로 그런 것들과는 아무 관계없이 청정하게 있음을 믿어도 된다. 사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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