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 사구게만이라도 받아 지녀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설한다면 그 복이 삼천대천세계의 칠보로 보시하는 것보다 수승하리니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중도(中道)를 가는 공덕일지니, 삼계(三界)를 버려서 삼천대천세계를 얻는 것이로다.
버려야 얻게 되고 비워서 채우게 되는 것이 바로 공(空)의 이치인데, 사구게로 자기를 비워서 그 안에 삼천대천세계를 채우면 그까짓 칠보야 돌덩어리에 불과한 것이 된다.
사구게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는 곧 자기를 이익되게 함이니 자리(自利)를 얻되 얻는 것이 없는 것이 되는 사실을 말한다.
상(相)을 떠나게 되는 것 자체가 바로 자리(自利)인 것이다. 그 외 어떤 다른 이익을 얻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사구게를 오히려 오염시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설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곧 다른 사람을 이익되게 함이니 이익을 주는 것이 없이 이익되게 하는 것이다.
곧 타인이 이것을 듣고 타인이 상(相)을 떠나게 하는 것 자체가 이타(利他)인 것이다.
그 외 다른 어떤 이익을 타인에게 준다고 생각한다면 사구게를 설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아상을 강화시키는 것이므로 오히려 자기 자신을 해(害)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구게를 잘 받아 지니고 타인을 위하여 설하는 것은 자타(自他)의 상(相)을 떠나는 것으로 한량없는 복을 갖게 되는 것이므로 칠보로 보시하는 것보다 공덕이 비교할 수 없이 무한하게 된다.
사구게 앞에서는 나를 들이밀지 말고 사구게가 나를 움직이게 해야 한다.
그렇게 움직이게 된 나를 타인에게 내미는 것이 바로 타인을 위하여 사구게를 설하는 것이 된다.
이것이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저절로 전달되는 것이다.
이것이 진리를 포교하는 것이고, 불법을 전파하는 것이고, 도를 전하는 것이고, 내 존재를 보시하는 것이고, 여래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여래가 설한 바 법(法)이 가지는 공덕인데, 우리는 이것을 법보시(法布施)를 한다고 표현한다.
사구게를 앵무새처럼 외우고 자기 자신에 대해 행(行)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수지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암기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사구게의 공덕이 전혀 없다.
그런 상태에서 사구게를 다른 사람에게 읊어주고 설한다면 같이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지는 일이라, 법보시가 오히려 천하의 독(毒)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