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경영하는 금강경 season2 (9.의법출생분5)

어디에든 머물면 불법(佛法)에 어긋나게 된다.

by 하이붓다 지공선사

수보리 소위 불법자 즉비불법

(須菩提 所謂 佛法者 卽非佛法)


수보리야, 이른바 불법이라고 하는 것도 곧 불법이 아니니라


불법(佛法)은 존재 그 자체이다.


존재 그 자체 가운데 특히 존재의 근본인 부처의 모습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따라서 불법이란 한계가 없으며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상대로 따로 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종교라는 관점에서 형식이 고유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석가모니께서 이 지구에 오신 이후 새로운 가르침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어도 그대는 불자(佛者)이고 알라신을 믿어도 그대는 불자이고 아무것도 믿지 않아도 그대는 불자이다. 그대가 어떤 모습으로든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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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불법이라고 이름 붙이면 그 순간 불법에 어긋나는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여래서 설(說) 한 것이 없으며 설한 것도 모두 뗏목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불자라고 생각하면 이미 불자가 아닌 것이고, 부처가 되겠다고 하면 영원히 부처가 될 수 없고, 부처님이 최고라고 생각하면 부처님을 무시하는 것이 되고, 불법을 깨치겠다고 하면 불법을 깨칠 수 없게 되고, 불교를 내세워서 자비를 베풀면 불교를 망치는 것이 된다.


그래서 무주(無住)라고 하는 것이다. 어디에든 머물면 불법에 어긋나게 되는 것이다. 불법에 머물면 그것은 곧 불법에 어긋난 것이 된다. 불법에 어긋난다는 것은 전체로서 존재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부분으로서 항상 고(苦)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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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는 이미 세워져 있고 길도 끝까지 닦여 있는데, 단지 자기 자신이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 못되기 때문에 항상 그 자리에서 머물고, 또 억지로 길을 가다가 옆길로 새고 만다.


문제는 길이 아니라 길을 가다가 중간에 머물고 마는 나 자신이 문제인 것이다.


여래의 설한 법을 깊이깊이 자기 내면에 받아들여 한없이 무거운 번뇌망상의 짐을 덜어내어 마음의 무게를 제로(0)로 만들고, 여래의 등불로 자기 내면을 비춰 자성불을 보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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