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는 법신이라 본래 형상이 없어 색상(色相)으로 볼 수 없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32상으로서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32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32상은 곧 상이 아니고 그 이름이 32상이기 때문입니다.
여래는 법신(法身)이라 본래 형상이 없으니 32상(相)이든 320상(相)이든 여래를 색상(色相)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지금 불자들이야 상식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 시대는 지구상에 처음으로 나타나 신(神)인지라 여래나 부처 등에 전혀 무지한 때이므로 여래께서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주시는 것이다.
나는 법당의 부처님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그래서 가끔 내가 불자(佛子)이긴 불자인가 보다 하고 스스로 생각하며 웃곤 한다.
그렇다 부처님상을 쳐다본다고 해도 먹을 것이 나오지 않지만 이상하게 배고픔이 사라진다. 아마 부처님의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이 내게 전달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상(相)을 통해서 여래를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상을 보지 않고서 우리들이 무엇으로 여래를 인식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여래의 색상(色相)도 제대로 마음에 담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여래를 볼 수 있겠는가?
뜰 앞에 피어있는 꽃 한 송이 에서 여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여래를 보기 위한 그 어떤 형상도 필요하지 않다.
눈으로 법(法)의 실상을 보고, 귀로는 진리(眞理)의 소리를 듣고, 코로는 자비(慈悲)의 향기를 맡고, 혀로는 여래의 감로수(甘露水)를 맛보고, 몸으로는 여래의 광명(光明)을 느끼고, 뜻으로는 자성불(自性佛)에 항상 마음을 두고 있다면 여래를 보기 위한 그 어떤 형상도 필요하지 않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내 상(相)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로 색상(色相)의 불신(佛身)을 조성하면 유위복(有爲福)을 얻어 여래를 볼 수 있는 길로 쉽게 가게 되고, 내 마음의 안이비설신의로 마음의 불신을 조성하면 무위복(無爲福)을 얻으면서 여래를 참되게 보게 된다.
단, 복을 받고 공덕을 쌓으려면 여래의 상(相)을 조성하는 것은 여래와 더욱 멀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환희심을 가지고 즐겁게 조성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저절로 복이 그냥 착 달라붙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