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금강경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아상이 없으며 인상이 없으며 중생상이 없으며 수자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하면 아상은 곧 이상이 아니며 인상, 중생상, 수자상도 곧 이 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일체 모든 상을 떠난 것을 이름하여 모든 부처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경을 듣고 믿어 받아들이고 지닐 수 있으려면 사상(四相)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상(四相)이 없어야만 이 경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아상(我相) 덩어리가 되어 있는 우리가 신해수지(信解受持)하려고 하니 어찌 가능하겠는가?
그런데 역설적으로 말하면 사상이 없는 사람이 되면 이 경은 뗏목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신해수지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어버린다.
사상을 떠난 존재를 이름하여 부처라고 하니 한마디로 부처가 되어야만 이 경을 지닐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모든 존재의 근본이 부처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상이 곧 상(相)이 아니다.
우리가 일시적으로 사상을 가지고 있지만 다행히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나 자신이 아니고 고정된 것이 아니므로 언젠가는 자기 노력 여하에 따라 사라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한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예외 없이 모두 다 근본적으로 이 경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이고, 그 이유는 바로 이 경(經)은 나라는 부처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라는 것은 물론 상(相)이 없는 무아(無我)로서의 나를 뜻한다.
석가모니불은 금강경을 통해 하루속히 자신의 본질을 알고 부처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자기로 돌아가도록 점잖게 재촉하신다.
그러므로 이 경을 받아들이는 수준 내지 정도는 정확하게 자기가 얼마나 사상이 사라지는가 하는 정도에 정확하게 비례한다.
사상이 사라질수록 금강경에 숨어있는 비밀한 뜻이 저절로 드러나고 그에 비례하여 내면이 충만한 존재로 탈바꿈되어 간다.
내면이 완전히 단일한 마음 (즉, 자비심) 하나로 충만하여 더 이상 생(生)을 비롯한 그 어떤 것도 필요 없게 된 존재가 바로 부처이다. 그것이 바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