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로 자기를 우선 제대로 바꾸어가야 한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이와 같은 경전을 얻어 듣고 믿어 알고 받아지니 기는 족히 어렵지 않거니와, 만약 오는 후오백세에 그 어떤 중생이 이 경을 얻어 듣고서 믿고 알고 받아 지닌다면 이 사람은 곧 제일 희유함이 되겠습니다.
왜 수보리존자는 이 경을 받아 지니는 것이 쉬운데 타인들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가?
수많은 불자들이 이 경을 이해하려고 무척 애쓰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만큼 성과가 없이 여전히 답답해하는가?
바로 자기 머리로 경(經)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불가능한데 그렇게 하려고 하니 경을 받아 지니지 못하고 답답해하고 스스로 하근기자가 아닌가 또는 자기가 불교와 인연이 없는가 하는 망상을 품고 저절로 후퇴하게 된다.
어떤 종교는 인간이 머리로 이리저리 꿰어 맞춰 만들어놓은 인간위주의 사상에 지나지 않는지라 조금만 머리로 생각해도 쉽게 알 수 있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써 대우주의 세계와 그 운행법칙을 알려주는 것이다. 삼천대천세계의 영혼세계와 부처님의 세계, 그리고 이 속에 본래부터 속해있는 자기 존재의 근본을 알려주니 머리 위주로 살아가는 우리가 생각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당연하다.
이 경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로 자기를 우선 제대로 바꾸어가야 한다.
그러면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해되어 버린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일체가 진리이고 실상이고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으라고 하지 않아도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저절로 믿고 감격하게 된다. 이 때문에 불교가 적극적으로 다른 종교처럼 포교하는 의지가 그렇게 강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가르침이 진리(眞理) 라야 이런 여유와 의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종교는 악착같이 포교하여야 겨우 유지될 수 있는 사상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압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없다.
그러면 자기를 어떻게 이 경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어갈 수 있는가?
그 근본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해야 이 경을 믿고 받아들이고 지닐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휴머니즘의 최고 하이라이트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 세계에서 인간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고 과학기술 등의 연구가 발전할수록 모두 불자(佛子)가 되어가게 되어 있다.
불교는 이렇게 휴머니즘과 신성(神聖)을 완벽하게 갖춘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