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경영하는 금강경season3(23.이상적멸분17)

보살은 무엇을 하든 저절로 머무는 바가 없이 하게 된다.

by 하이붓다 지공선사

수보리 약보살 심주어법 이행보시 여인 입암 즉무소견 약보살 심부주법 이행보시

(須菩提 若菩薩 心住於法 而行布施 如人 入暗 卽無所見 若菩薩 心不住法 而行布施)


여인유목 일광명조 견종종색

(如人有目 一光明照 見種種色)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마음이 법에 머물러서 보시하면 마치 사람이 어두운 곳에 들어가매 아무것도 보이는 바가 없고 없는 것과 같고, 만약 보살이 마음이 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서 마치 사람이 눈도 있고 햇빛도 밝게 비춰서 여러 가지 사물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종교의 가장 큰 폐단은 무엇인가?


바로 무위행(無爲行)을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인과법을 모르면 그저 상대방이 잘 되기를 바라면서 정(情)으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도와줄 것인데, 인과법을 가르쳐 놓으니 보시를 할 때 저절로 그것이 머릿속에 떠오르게 된다. 보시를 하면 본래 순수한 마음속에 복(福)이 올 것이라는 의식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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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무주상보시로 무량한 공덕이 될 수 있는 것이 그만 그런 의식 속에 갇혀 한계를 가지는 공덕으로 끝나고 만다.


또한 종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자기를 지나치게 긴장시키면 여러 가지 문제가 또 초래된다.


자연(自然)을 거스르는 인위(人爲)는 항상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종교라면 그런 올바른 가르침을 주면서 동시에 그런 가르침을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하는 법이다.


종교의 가르침은 본래 중생의 오랜 습성과 집착으로 인해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바, 어떤 종교에서 보듯이 신(神)에게 매우 빠져들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절대 다가갈 수 없다.


오로지 철저하게 자기의 중생의 면모를 깊이깊이 통찰하고 참회하고 그런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는 본래의 자기가 있음을 알고 거기로 향해 나아가도록 채찍질해야만 가능하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발적인 각성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법에 머물러서 보시하면 어두운 곳에 들어가 아무것도 보이는 바가 없는 것과 같다고 하신다.


무엇이 보이지 않는가?


바로 자기 자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다.


왜 그런가?


보시하면서 머무는 그 마음이 바로 상(相)을 더욱 두텁게 포장하기 때문이다.


나쁜 마음을 버리기도 쉽지 않은 것이 우리 중생인데 하물며 그런 좋은 마음을 버릴 수 있겠는가? 그런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별로 많지 않은 이 세계인데.


좋은 마음이 둘러싸고 있는 아상(我相) 등은 공(空)을 향하여 나아가는데 더욱 큰 장애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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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착하게 살면 되지', 뭐 신을 믿고 도를 닦느냐'는 사람 등이 여기에 속하는 부류이다.


실상이 이런데, 하물며 자기 종교를 내세우며 보시를 하는 사람은 수렁에 빠지는 것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진리를 가고자 하는 사람에 한해서 말이다.


석가모니불은 아주 여러 번 금강경에서 이런 것을 경고해 주신다.


도(道)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이 지구가 일찍이 도(道)가 모두에게 잘 실천되고 있다면 석가모니불께서 이 지구에 오셔서 죽을 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도(道)가 사라지고 억지가 횡횡하니 석가모니불과 예수님 등이 오시고 그분들이 오시니 불교나 기독교 같은 종교가 생겨난 것이다.


그러니 도(道)로부터 2단계나 떨어져 있는 종교를 내세워서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것은 3류 인생이나 하는 방식이지 일류인생을 사는 불자(佛子)가 할 방식은 아닌 것이다.


불자라면 모름지기 도(道)의 차원에서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야 하거늘, 보시할 때 부처님과 인과법을 좀 제쳐두는 것이 바로 진정으로 여래와 자성불(自性佛)을 따르는 것이 된다.


반대로 마음이 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마치 사람이 눈도 있고 햇빛도 밝게 비춰서 여러 가지 사물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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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시하면서 기쁨조차 느끼지 않는 당위성을 세우고 순수한 독지가(篤志家)라면 이 말씀의 의미가 어렴풋하게나마 이해될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종교조차 필요 없다. 이미 도(道)와 무위(無爲)를 실천하고 있으니까


여러 가지 사물을 볼 때는 눈도 있어야 하고 햇빛도 밝게 비춰야 한다.


사물은 무엇인가? 바로 실상(實相)이다.


눈은 무엇인가? 자성불(自性佛)의 안목이다.


햇빛은 무엇인가? 여래의 광명(光明)이다.


마음이 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이와 같은 것들이 드러나게 되는데, 이런 존재를 보살(菩薩)이라고 한다.


보살 되기 어렵지 않다. 자기 존재 자체가 그 마음이 따로 머무는 곳 없는 그런 존재가 되어서 보시행(行)을 하면 된다. 보살은 무엇을 하든 저절로 머무는 바가 없이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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