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경영하는 금강경season3(22.이상적멸분16)

금강경은 진리를 가르치면서도 진리에 매이지 않는 완벽한 자유를 주고 있다

by 하이붓다 지공선사

수보리 여래 소득법 차법 무실무허

(須菩提 如來 所得法 此法 無實無虛)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바 법인 이 법은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느니라


앞에서는 여래가 무소득법(無所得法)이라고 하여 여래가 얻은 바 법이 없다고 하셨지만, 여기서는 소득법(所得法)이라고 하고 그것이 무실무허(無實無虛)라고 하신다.


인간이 하는 일체의 행(行)은 그 결과를 낳고 그 결과에 대해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얻었다 또는 못 얻었다 또는 잃었다고 그 결과에 의미를 두고 평가를 한다.


본래 내가 행을 해서 나타난 결과는 나타나는 순간 나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인데, 굳이 그 결과를 내게 끌어다 초강력본드로 착 붙여서 내 자신이 결과에 구속당하여 자유를 잃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 우리 중생이라. 집착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나 보다.


그래서 석가모니불께서 너무나 친절하고 자상하시게도 여래가 법을 얻었다고 반대로 표현하고 대신 그것은 실함도 없고 허함도 없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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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법을 '얻었다', ' 얻지 못했다', '얻는 것이다', '얻는 것이 아닌 것이다'라는 등의 표현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그 법에 나 자신을 달라붙게 해서 부자유(不自由)라는 고통을 만들지 말라는 의미이다. 그런 존재가 여래가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꿀이 아무리 달콤해도 내 몸이 전부 꿀단지 속에 빠져 꿀에 달라붙어 있다면 어떻겠는가?


여래가 얻은 이 법이 실다움이 없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뭔가 실다움이 있으려면 그것은 따로 실체(實體)를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그 법은 나의 본래면목과 따로 분리되어 다른 형태로 상(相)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존재가 그 영혼까지 사라지고 그야말로 순수한 허공만 남아있다면 인과법이나 인연법이 있을까? 있을 이유가 없으므로 없게 된다.


그러므로 진리나 법이라는 것은 나 이전에 또는 존재 이전에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법(法)이나 비법(非法)이나 모두 나라는 존재와 항상 하나로 움직인다.


나를 두고 따로 생각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실다움이 없게 되는 것이다.


나의 본래면목에 대응하는 것이 법(法)이고 나의 사상(四相)에 대응하는 것이 비법(非法)이라고 굳이 말할 수 있다. 비법은 업장을 남기고 그에 따른 고통을 초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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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가 얻은 이 법이 헛됨이 없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반야심경에 진실불허(眞實不許)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인과법이나 인연법, 또는 연기법 등이 공(空) 하지 않고 엄연히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가 어떤 행(行)을 해서 결과를 낳게 되는데, 그 결과는 어떻든 본래는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또 한편에서는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그 결과의 구속력 속에 존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어찌 법이 헛됨이 있겠는가?


여래가 얻은 법(法)은 상(相)이 없으니 실(實)함이 없고, 상(相)이 있으니 헛됨(虛)도 없다.


어느 쪽을 택할지는 오로지 그대의 의지에 달려있다.


금강경은 단지 진실을 알려줄 뿐이다. 그리고 선택하는 것조차 그대의 자유에 완전히 맡겨놓았다. 그리고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대는 금강경으로부터 존중을 받고 있다.


그러니 진리를 가르치면서도 그 진리에게조차 매이지 않도록 존재를 완벽하게 자유롭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가르치면서 동시에 그 가르침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것, 가히 석가모니불이라는 신(神)의 가르침이 아닌가? 완벽한 휴머니즘이자 동시에 위대한 신성(神性)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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