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경영하는 금강경 season4(3.지경공덕분3)

금강경은 마음을 열어 스스로 갇힌 감옥으로부터 당당하게 걸어 나오게 한다

by 하이붓다 지공선사

수보리 이요언지 시경 유불가사의 불가칭량 무변공덕

(須菩提 以要言之 是經 有不可思議 不可稱量 無邊功德)


수보리야, 요약해서 말할진대, 이 경은 생각할 수 없고 말할 수도 없는 끝없는 공덕이 있느니라


이 말씀은 한마디로 이 경을 자기 영혼(靈魂) 속에 지니는 공덕에 대해 아예 생각하거나 따지거나 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첫째, 이 공덕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하는 순간 자기의 의식 차원에 한정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상(相)으로 존재하는 우리 중생은 그 생각 역시 상(相)을 만들어 틀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상(想像)조차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또한 생각은 정확하게 알고자 하는 순수한 생각이 아니라 자기의 희망, 욕망 등이 무의식 중에 담긴다. 그래서 공덕이 크니 작니 하면서 자기 멋대로 따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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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 공덕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순간 어긋나기 때문이다.


공덕이 얼마나 크고 작은 지를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덕이란 것이 물질도 아니고 고정된 것도 아니며 무한한 것도 아니지만 유한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공덕은 자기 존재 자체와 같이 움직이는데, 자기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채로 지내는 것이 우리 중생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우리 중생을 일컬어 무명(無明)이라고 이름을 붙였겠나.


그러니 공덕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따지게 되면 공덕의 실상(實相)을 왜곡하게 되므로 정견(正見)이 아니라 사견(邪見)을 가지게 되는데, 그러면 오히려 금강경을 수지한 공덕은 사라지고 금강경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된다.


셋째, 이 경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금강경의 공덕은 생각이나 말로 할 수 없는 끝이 없는 그런 것이니 그에 상응하게 공덕을 받아들이려면 당연히 마음을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은 우주보다 더 클 수 있고 바늘 끝보다도 더 작아질 수 있는 신축성 만점이다.


그럼 생각으로는 이 경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겠는데, 도무지 마음으로는 썩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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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바로 금강경의 역할이 있다.


그대의 마음이 한없이 닫혀 스스로 한 평 감옥을 만들어 그 속에서 사는 것을 본래 인생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우리에게 금강경은 그 마음을 열어서 상(相)으로 이루어진 감옥을 부수고 스스로 당당하게 걸어 나오게 한다. 즉, 스스로 죄수가 되어 지내는 것을 자유인으로 돌아가도록 해주는 것이다.


자, 그대가 삼천대천세계를 칠보로 가득 채워보기도 하고, 목숨을 수없이 보시하기도 해 보고, 인욕바라밀도 해 보고, 부처가 되어보기도 해 보고, 아라한이 되어보기도 해 보고, 항하사의 모래가 되어보기도 해 보고, 미진이 되어 보기도 해 보자. 마음으로 해 보니 돈도 들지 않고 시비 거는 사람도 없이 완전 공짜이다.


그러다 보면 금강경이 그대에게 마침내 불가사의하고 불가청량하고 무변한 공덕을 듬뿍 안겨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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