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경영하는 금강경 season4(5.지경공덕분5)

내가 짊어지고 있는 짐을 하나하나 상대하지 말고 통째로 벗어버려야 한다.

약유인 능수지독송 광위인설 여래 실지시인 실견시인 개득성취 불가량 불가칭 무유변

(若有人 能受持讀誦 廣爲人說 如來 悉知是人 悉見是人 皆得成就 不可量 不可稱 無有邊)


불가사의공덕 여시인등 즉위하담 여래 아뇩다라삼먁삼보리

(不可思議功德 如是人等 卽爲荷擔 如來 阿耨多羅三藐三菩提)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널리 사람들을 위하여 설한다면 여래는 이 사람을 모두 알고 이 사람을 모두 보나니, 이 사람은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며 끝이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공덕을 모두 성취하게 되리라. 이 사람은 곧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짊어짐이 되느니라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짊어지려면 다른 모든 짐을 내려놓아야만 한다. 다른 모든 짐을 내려놓아야만 한다.


수행인이 마지막으로 지고 있는 짐은 무엇인가?


내가 깨달음을 얻었다거나, 번뇌망상을 벗어났다거나, 성불했다거나, 아라한이 되었다거나, 금강경을 통달했다거나 하는 등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한없이 얇아진 상(相)일지라도 상(相)은 여전히 상(相)으로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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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안에 한 점의 티끌만 한 견해라도 있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짊어질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느닷없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짊어진다는 표현을 왜 사용했는가?


예수도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은 나에게 오라고 말씀했지만, 우리 중생의 특성은 늘 어떤 짐을 지고 끙끙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가 마치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것 같은 정도이다.


우선 육체라는 짐을 짊어지고 있고 거기에 따른 마음의 짐도 같이 짊어지게 되고, 또 가족과 나아가 자기가 인연 맺고 있는 모든 것들을 자기도 모르게 짊어지고 있다.


문제는 그 한량없는 짐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짐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또 자기가 내려놓고 싶은 짐은 오래되어 짐이 오히려 자기 등에 착 달라붙어 있어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떨어뜨리려면 등짝 피부가 벗겨지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 자기가 계속 지고 싶은 짐은 점점 불어나서 허리를 구부러지게 만든다. 그리고 자기의 존재와 인생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짐을 내려놓을 의지도 강하지 않다.


이런 중생세계의 상황에서 길은 딱 두 가지밖에 없다.


눈 딱 감고 아까운 짐이든 거추장스러운 짐이든 내려놓든가 아니면 자기가 그 짐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기르든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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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정쩡하게 지내다가 세월이 흐르면 결국은 그 짐에 깔려 죽고 만다. 그때서야 후회한다.


금강경은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짐들의 속성을 간파한다.


그 짐들이 우연히 나에게 와서 내가 짊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상(相)을 일으키니 그 상(相)에 따라온 것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신다.


그러니 짐을 애써서 하나 벗어도 또 다른 더 큰 짐이 오게 되고, 짐을 내려놓으려고 발버둥 칠수록 짐들은 더욱 강하게 달라붙는 것이다.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으로부터 형벌을 받고 있는 시지프스(Sisiphus)의 바위 같은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짐과 끝없는 숨바꼭질을 하거나 쳇바퀴를 돌리다가 지쳐 쓰러지지 말고 그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시지프스 자신이 아예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 금강경을 잘 받아 지니고 믿고 외우고 타인을 위해 설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속의 짐을 금강경으로 점차 무게를 줄여가고 숫자도 줄여가고 급기야 짐이 들어앉는 자기 마음 자체를 통째로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체무(一切無)라는 것이다. 모든 짐은 본래 그 실체가 없고 내 상(相)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모습으로 나타난 형상(形相)에 불과하니 나 자신을 일체무(一切無)로 만들어가야 된다. 그 많은 짐들도 신기하게도 어느덧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이 우주를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가벼운 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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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면 짊어지고 있는 짐들을 하나하나 상대하지 말고 짐을 지고 있는 자기 자신을 통째로 벗어버리고 상(相)을 넘어서 자기 본래 존재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무게가 완전히 없다. 따라서 아무리 크게 짊어지더라도 조금도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무게가 전혀 없는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짊어지려면 나 자신의 무게도 없어야만 가능하다. 그것이 바로 무상(無相)이고 무아(無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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