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보시보다 더 수승한 복은 금강경을 순수한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믿는 마음이 거슬리지 않으면 그 복이 저 몸을 보시한 복보다 수승하리니, 어찌 하물며 경을 받아지니고 읽고 남을 위해 해설해 줌이겠는가?
저 앞의 보시보다 더 수승한 복이 바로 이 경전을 일단 듣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믿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복(福)이 그렇다는 것이다.
수많은 불자들이나 또는 옛 성현들이 좋은 가르침과 글을 즐겨 읽고 그 말을 잘 믿고 새기며 실천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왜 이런 크다고 표현할 수도 없는 그런 무량한 공덕이 생기지 않을까?
그것은 바로 그 믿음이 온전하고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면 반드시 행(行)으로 나타나야 되고 이것은 자기 영혼(靈魂)이 움직여야 되는 법이다. 온전하다는 것은 자기 존재 전체가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 믿음이 두뇌 속에 생각으로만 머물기 때문에 그 행(行)이 불완전한 것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자기의 욕망(慾望)과 업장(業障)과 마장(魔障)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인데, 이런 것들을 이기려면 힘이 있어야만 된다. 이런 힘을 내려면 반드시 자기 존재의 주체인 영혼이 힘을 내어 같이 움직여주어야만 된다.
순수한 믿음을 갖게 되면 그 마음이 태양보다 더 밝아지게 되어 있으며 무한한 환희심이 솟아 나오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자기의 상(相)을 넘어서는 자기의 불성(佛性)에까지 그 설법이 가서 닿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부처님의 이런 희유한 설법을 듣고도 내면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바로 믿음에 불순물이 끼어있기 때문이다.
그 불순물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자기의 망상(妄想)과 고정관념과 선입견, 그리고 굳어진 사고방식 등이다.
부처님의 설법이 자기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이미 만들어 놓은 소프트웨어(software)인 이런 불순물에 의해 오염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설법에 대한 믿음이 순수하고 온전하다면 한없는 환희심을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자기 영혼이 움직여서 행(行)으로 즐겁게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이 경을 듣고 믿는 것이 되고 그 복은 자기 목숨을 무량한 세월 동안 쉬지 않고 보시한 공덕보다 더 수승하게 된다.
믿는 마음이 거슬리지 않는다는 것은 무조건 믿는 맹신(盲信)과 광신(狂信)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자기의 철저하게 깨어있는 의식이 그 믿음과 하나로 합치되었을 때를 말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순수하고 온전한 믿음을 갖기 위해 우선 자기 자신의 근본 성품을 스스로 잘 탐구해 보라고 말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의 내면에는 금강경을 듣고 받아들이는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금강경은 바로 그대 존재의 근본에 대해 설법하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