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큰 아픔은 언급도 못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다른 날과 다르지 않게 살아가면서 유일하게 시간에게 의지한다.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걸 너무 알아서 그저 시간 위에 희석시키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일 거다. 큰 아픔일수록 내색도 못하고 자잘한 아픔을 앞세워서 다른 사람들과 별 다르지 않다는 듯 일상을 살아간다. 그 와중에 뜻 모를 미소도 짓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그 미소가 진짜 내 거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 속에서 그 미소를 반복해서 짓곤 한다. 별 수가 없으면 그렇게라도 살아내야지 어쩌겠나 싶다.
어제는 집으로 일감을 가져와서 새벽까지 했다. 시간을 다투는 일들이 줄을 서 있는 터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시국이 만들어낸 기가 막힌 업무인데 복잡하기가 무엇에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한 업무였다. 이번 주를 그걸 해결하는데 모두 소비했다. 그 업무를 처리해야 다음 업무가 가능해서 죽을힘을 다해 방금 전까지 해결했다. 풀리기 어려운 복잡한 업무인데 맞는지 검증까지 해서 완벽하게 처리했다. 검증 후 그 성취감을 "와~, 맞았다."라고 허공에라도 소리치고 싶은데 그 대신 이렇게 쓴다.
요즘 내 건강상태가 영 아니다. 긴병에 효자 없고 흥겨운 풍월도 한두 번이지 자주 들으면 싫어하는데 하물며 아프다는 말은 더 듣기 싫을 것이다. 그런데 위염에 피부병에 어깨 통증에 오늘 아침부터 시작된 감기까지 자잘한 질병이 내 몸에 달라붙어 살려고 하나하나 달려든다. 콧물은 제어가 안되는데 무슨 급한 일이라고 이렇게 자판을 두드린다. 나란 사람 참 별나다.
큰 병은 말도 못 하고 자잘한 병은 옆집 강아지 이름 부르듯 잘도 읊어댄다. 그 와중에 업무는 폭탄이다. 지난 12월부터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일이 많다. 진저리를 쳐가면서 시간과 동무하며 하나하나 소화해 내고 있다. 일이 과중해서 잔병들이 달려드는지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지만 내 몸은 이래저래 호떡집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바쁘다.
좀 아프지만 일을 하나하나 해결해 낼 때의 성취감은 또 말로는 다 못한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내 직업이 워낙 소득이 겸손하고 소박해서 그렇지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고 그러니까 더 매력이 있고 더불어 성취감도 맛보게 해 주고 여러 측면에서 효자다.
비 오는 날 우산 속에서 감사하며 출근을 하곤 한다. 내가 직장엘 안 다녔더라면 빗속을 뚫고 이렇게 거닐 것인가? 눈보라가 쳐도 집안에 콕 들어앉아 있을 이 상황에 눈보라의 한가운데를 헤치고 걷고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직장 다니는 것을 많이 감사해한다, 그런 외형적인 모습만 감사한 게 아니다. 내가 만약 직장을 안 다녔더라면 스스로 많이 힘들게 했을 것이다. 의미 있고 생산적인 삶이 삶이지 그저 시간만 축내는 게 삶이냐는 질문을 시시때때로 해댈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도 직장을 다니는 건 고마운 일이다.
지금 병석에 계신 우리 엄마가 이전에 나를 보면서 아프면서도 아이들 키워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직장에 다녀야 하냐고 걱정이셨다. 그런데 실제로는 나의 소득으로는 한 푼도 아이들을 위해 쓰이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냥 조금이라도 수입이 있으니까 다른 소비해야 할 일을 주저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업무로 얻은 성취감이나 업무의 난이도에 비해서 소득은 검소한 사람 용돈 정도다. 그래도 매번 일을 할 수 있음을 감사히 생각한다.
세상사 어느 경우도 딱 한 가지만으로 되어 있는 게 없다. 힘든 일 후엔 성취감이란 선물이 기다리고 있듯이 세상을 살면 나쁘다고 다 나쁘지만 않고 좋다고 다 좋기만 하지도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러나 생명과 직결될 경우 더없이 겸손해진다. 아픈 건 좋은 것과 동반하지 않는다. 크게 아프면 그냥 두렵고 아플 뿐 좋은 것과 더불어서 당사자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극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자기 최면과 노력이 동반될 뿐이다.
스스로 나약한 자신을 마주하기 싫어서 더 껍질을 두껍게 포장하기도 한다. 미소와 웃음까지도 때로는 포장일 때도 있다. 그렇지만 반드시 통로는 있을 것이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좋은 카드를 자주 사용하다 보면 그 아픔까지도 극복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당당히 아픔에게 친구 하자고 제의하고 내 곁에 너무 가까이 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도 해 보는 거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정도로 크게 욕심내지 않고 살아 있는 동안 건강하게 살았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본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