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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Feb 05. 2022

내리막 길

공허함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다.

젊어서는 손과 발이 말보다 기도보다 빨랐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의 생명이요 삶이었다.

그들의 성장과 발전이 내가 살아있는 이유였다.

내 젊음을 기꺼이 내어주고 이제는 중력의 이끌림에 껍질만 남았다.

바스락거리는 건 가을을 머금은 겨울에 나뒹구는 낙엽만이 아니다.

껍질뿐인 내 몸이 바스락거리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 빗방울과 함께 튀어 오르는 물고기들처럼

고소함이 송골송골 피어나며 타닥 타탁 튀어 오르는 불판 위의 검은콩들처럼

날마다 날마다 북적이고 북적이던 나날들이 이제는 텅 빈 공간으로 남았다.

밤새 소리 없이 내린 하얀 눈이 온 세상까지 텅 빈 공간으로 만들어버렸다.

감당하기 버거운 텅 빈 공간은 날마다 날마다 그리움으로 채워보지만 그마저 흐릿해진다.

이제 더 이상 빈 공간은 되돌릴 수 없다.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텅 빈 공간은 커져만 간다.


바스락거리는 두 손을 모으고 오늘도 기도를 한다.

북풍 속에 묻어있는 차가움을 맞으며 휘몰아치는 공허함에 온몸을 움츠린다.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가는 텅 빈 공간은 금세 나를 삼킬 것만 같다.

어떻게 반백년을 버틸 수 있을까?

버티고 버티면 그 끝엔 무엇이 있을까?

지금은 그래도 바스락거리는 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언젠가는 그 마저도 들리지 않겠지?


텅 빈 공간, 공허함이 곧 나를 밀어낼 것만 같다.

그래도 지금은 몰려드는 공허함을 몰아내려고라도 한다.

어느 날은 공허함이 여백이요, 여유라고 포장도 해본다.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는 손과 발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그동안 그 손과 발의 수고를 아직은 기억하고 있다.

아직도  무언가를 향해 희망을 노래해야만 하는 건 아닐 것이다.

눈에 보이는 텅 빈 공간을 두려워만 하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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