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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Oct 26. 2023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다는 건

사랑

  나이 쉰이면 지천명(知天命)이라는데 하늘의 뜻은 고사하고 가까운 이들의 마음도 모르고 살았다. 나 혼자 아주 철없이 좋아하고 아무 생각 없이 남의 일이든 내 일이든 똑같이 그냥 보이는 대로 좋아하고 기뻐하며 살았다. 그게 뭐 철없고 속없다고 생각하는 게 맞는 건가 지금도 의문이다. 내 일이든 남의 일이든 기쁜 일에 그냥 기뻐하는 게 차라리 당연한 게 아닌가 싶다.


기쁜 일에 진심인 사람은 직계가족이다. 방계가족은 개인성향에 따라 진심으로 기뻐하는 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이 가 있다. 친구? 형제자매 중에도 내 기쁨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친구가 내 기쁨에 진심으로 기뻐할까? 방계가족처럼 개인차가 좀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내 기쁨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마음, 그게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 무엇이냐고 또 물으신다면 주고 또 주고 또 줘도 또 주고 싶은 마음, 바로 그게 사랑이다. 아주 주관적인 나만의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오십 중반에 누적된 나만의 나이테로 주장하는 바라고 해 두자.


좀 서글픈 경험을 했다. 내게 영광스러운 일 또는 자랑스러운 일이 생기면 가장 기뻐하는 이는 내 부모님이다. 물론 내 남편도 나만큼 기뻐한다. 내 형제? 당연히 나만큼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 내 형제의 기쁨을 난 엄청나게 기뻐하기 때문이다. 그냥 기뻐하는 수준이 아니다. 내 형제의 영광은 나의 영광이자 자랑이었다. 그러나 나와 같지 않다는 걸 알았다. 기뻐하는 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다는 걸 알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방계가족, 직계가족 운운하기 시작한 거다.


모르고 살아야 할 걸 알아버린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서늘한 바람이 심장을 스쳐 지나가곤 한다. 한 뱃속에서 태어난 혈육도 내 기쁨을 온전히 기뻐하지 않은 세상을 살고 있다는 걸 알아버린 건 상당한 충격이었다. 엉성한 밀도의 관계도 표면적으로 사랑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겉으로 사랑하는 것도 사랑이란 이름이 적절한지 그것도 모르겠다. 가깝기로 부모 다음으로 가까운 대상이 형제인데 그들 중에도 나를 사랑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는데 그 어떤 관계에서 사랑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세상천지가 다 삭막 그 자체다.


기쁨 그리고 슬픔, 관계 속에서 서로 나누며 사는 대표적인 감정이다. 가깝든 멀든 슬픔은 쉽게 공감한다. 그리고 슬픈 감정은 진심인지 아닌지 의심하지도 않고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거짓이 아니다. 반면에 기쁨은 표면적으로는 기뻐하나 속으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왕왕 있다. 기쁨엔 시기 질투 그런 이상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의 기쁨엔 진심으로 함께 기뻐한다. 결국 사랑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진심으로 기뻐하는 마음이 사랑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지난해 처음 알게 된 지인이 있다. 그분은 뭘 자꾸 준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 입장에선 아주 불편하다. 그래서 불편한 마음을 덜어내려고 어떻게든 보답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산다. 마음 주고 살던 사람에게 심한 배신감도 겪어보고 사는 동안 예방주사를 많이 맞아온지라 쉽게 마음을 열기가 무섭다. 그런 내게 사소한 문자에도 사랑표를 날린다. 아주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살다가 최근 들어 그분을 응원할 일이 있어서 문자를 하다가 그 낯선 사랑표를 나도 모르게 보내버렸다.


그 지인을 응원하던 일이 오늘 성취되었다는 소식을 내게 알려왔다. 정말 중요한 일이라 진심으로 응원했었다. 뜻을 이뤄 진심으로 축하해 주며 축하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며 정말 기뻤다. 그 중요하고 기쁜 일을 내게 두 번째로 알렸다는 것이다. 내가 뭐라고. 고마웠다.


혈육이라도 긴 세월 함께하다 보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마치 하루 날씨가 미세하게 아주 다채롭듯이 혈육에게도 그에 버금가는 감정들이 들곤 한다. 친구도 마찬가지로 내 마음 가는 만큼 돌아오지 않으면 서운하기도 하고 별별 마음이 들곤 한다. 그렇게 사노라면 진정으로 내 기쁨에 기뻐할 사람을 찾게 된다. 분명 내 주변에도 있을 거라고 두리번 거린다. 다행히 있다. 같은 일을 하는 연상의 동료. 그분은 내 마음을 포근히 감싸줄 분이다. 뿐만 아니라 내 기쁨을 당신 기쁨으로 여길 분이다. 그런 면에서 난 행운아다.


모래밭에서 사금을 발견하여 내 손에 보석으로 빛날 또 다른 분을 발견하는 건 아닌가? 하는 기대에 차있다. 내가 주장하는 사랑의 정의 두 가지를 갖춘 분인데 여전히 조심스럽긴 하다. 자꾸 뭘 주고 그리고 내 기쁨에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분의 기쁨에 진심이다. 편안하고 따스한 마음은 아직이지만 그래도 느린 내게 오래도록 진심이기를 기대한다. 언젠가는 내게 편안하고 따스한 마음으로 느껴지길 바란다.


사람, 무엇으로 사느냐고 묻는다면 그래도 사람인(人)의 모양처럼 서로 기대며 사는 게 인생사다. 길다면 긴 인생 그래도 살만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그 누구든, 누군가에게 따스함을 느낄 수 있도록 사는 게 정답인 것 같다. 누군가는 정답이 없다고 할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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