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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Sep 05. 2021

지옥 체험

모기 지옥

  휴일이라 마음먹고 쪽파 씨앗을 심으러 텃밭엘 갔다. 누구한테 조언을 구하지 않고 지금쯤 쪽파 씨앗을 심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서 검색을 하였더니 약간 늦은 것 같았다.  약간 늦은 감은 있지만 그래도 슬슬 농부의 촉이 발동한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침 등산길에 텃밭을 둘러보고 마는데 오늘은 완전 무장을 하고 엄마한테 얻어온 쪽파 씨앗을 챙겨서 텃밭엘 갔다.  배추씨앗을 뿌려 떡잎이 몇 개 났던 것들이 장마에 죽기 직전 상태라 정리하고 퇴비로 썩힌 깻묵을 뿌리고 호미로 땅을 뒤집어 줬다.


  본격적으로 쪽파 씨앗을 심기 시작했다. 한 줄을 채 못 심었는데 모기가 어마어마하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기승을 부리는 모기를 알기에 모자, 마스크, 긴팔 상의, 긴바지, 우리 집에서 가장 긴 목양말, 장갑까지 더 이상 무장할 방법을 몰라서 그 정도로 무장하고 갔다. 그런데 마스크 밖의 얼굴, 목 그리고 옷 위로 참을 수 없이 물기 시작했다. 특히 구부려 앉아서 씨앗을 심으니까 엉덩이, 허벅지  다리를 옷 위로 무지막지하게 물어 대서 흙 묻은 장갑을 벗고 한바탕 전신을 때려가면서 모기를 쫓았다. 다시 심던 쪽파 씨앗을 심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모기는 더 많이 심하게 나를 못살게 굴었다. 그렇게 몇 번을 몸부림을 쳐가면서 심는데 보슬보슬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으, 이게 무슨 난리냐?' 인내심이 바닥을 치는데 계속되는 모기 총공세와 빗속에서 모기가 토해낸 내 피까지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끝까지 쪽파 씨앗을 심었다.


  떡진 흙에 무거워진 신발을 겨우 옮겨가며 빗속을 뚫고 집으로 향했다. 누가 시켰으면 몇 날을 서러워하면서 진저리를 쳤을 것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이니 이 상황을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고 저벅저벅 걸어오면서 심각하게 흔들렸다. '텃밭을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올해 초 정식으로 내 텃밭을 하게 되어 지인에게 자랑삼아 말했더니  "아이고, 얼마나 먹겠다고~" 이렇게 말해서 우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까? 내가 텃밭을 하는 마음을 저렇게밖에 못 헤아리다니? 가까이 지내던 그분과 잠시나마 심하게 거리감을 느꼈었다. 그래서 우리 큰아이에게 물었었다. "엄마한테 텃밭은 뭐냐?" 주저 없이 "취미죠!"라고 대답했다. 그랬다. 내 최고의 취미였다. 씨앗을 뿌려 새싹이 움트고 점점 자라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힐링 포인트였다.


  경제적 득실을 따지기에는 좀 잔인한 면이 있다. 실제로 텃밭에 든 비용으로 유기농 식자재를 사 먹는 게 더 경제적이다. 그 정도로 제대로 수확을 한 게 거의 없다. 왕초보여서 더더군다나 더 그렇다. 거름, 씨앗, 모종 등으로 적지 않게 비용이 들기도 하지만 벌레 밥이 되는 게 다반사다.  


  최고의 손실은 시도 때도 없는 모기에게 강탈당하는 내 피와 그로 인한 후유증이 피해의 정점을 찍는다. 속으로 '일요일에 남들은 교회를 가는데 난 지옥을 체험하는구나!, 그간의 지은 죄가 엄청 많았나 보구나!'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한동안 텃밭 쪽에 발도 딛기 싫었다.


  나는 책상 서너 개 정도의 텃밭을 일구면서 이 험난한 지옥 체험을 하는데 이 일을 업으로 삼고 하는 분들은 얼마나 고생이 많은가? 농부의 자식인 나는 우리 부모님의 고단한 삶을 헤아려 보게 된다. 지금도 앞으로도 쉽게 구해서 먹는 식자재를 귀하게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갖고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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