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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Nov 12. 2021

안된다고 하면 더 하고 싶다.

커피, 자유

  데구르 구르는 낙엽만 봐도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방년의 나이도 아니다. 그럼에도 가을이 되면 고즈넉 해지고 멜랑꼴리 해지는 건 너나없이 느끼는 감정일 거다. 쌀쌀한 기운이 감돌아 옷깃을 여며야 하는 계절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안팎으로 나이테가 생기는 까닭일 것도 같다. 달랑달랑 매달려서 살랑살랑 흔들리는 창밖의 몇 안 남은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이 계절에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감정을 느껴본다.


  따뜻한 차 한잔 놓고 지난 시간들을 소환해보면서 하나하나 그리워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그리워해 본다. 운동회 때 모래주머니로 터트린 박처럼 그리워했던 많은 것들이 현실이란 시간들 속에서 터트려져서 아련하고 막연하게 그리워할 수 있는 게 몇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몽글몽글 피어나는 보석 같은 추억들이 있다. 때마다 되돌리고 싶은 시간들이 있지만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더욱 그리운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들으면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따끈한 생강차 한 잔 속에 피어나는 생강향이 야속하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생강차 대신 예전에는 차가운 기운이 감돌 때면 따끈한 커피 향에 취해 끝 모를 행복감에 젖었었다. 안 쓰던 일기장도 뒤적여 보면서 그리운 것들을 추억해보기도 하고 짧게라도 지나가는 시간을 일기장에 붙잡아 놓으려 했었다. 그때마다 내 옆에는 진한 커피 향이 번지고 있었다.


  별났다. 그 흔한 커피를 마시면 그만이지 무슨 되지 않을 넋두리냐고 할 것이다. 사람들은 모른다. 비가 금방이라도 내릴 것 같은 날 이불빨래를 창틀에 널어놓으면 '날씨 좋은 날 빨래를 널지 이런 날 무슨 이불빨래인가?' 할 것이다. 그 집은 다 그만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 기저귀를 갈아주다가 금세 그사이에 실례를 해버린 경우, 마시려고 둔 비트 주스를 엎지른 경우, 집집마다 다 그만한 사정이 있다.


  하루에 서너 잔은 기본으로 마시던 커피를 못 마시게 되었다. 병원에서 금해야 할 음식이라고 했다. 식사 생각이 없어도 커피를 마시기 위해 밥을 먹었었다. 밥이 주식이 아니라 부식이 되어 버린 샘이다. 그런 커피를 뚝 끊었다. 이년은 한잔도 마시지 않았다. 삼 년째는 몇 개월에 한 번씩 한잔씩을 마셨다. 그런 커피를 이번 주에 세잔이나 마셨다. 여기 이렇게 적은 것도 나에게 경고하기 위함인지 모른다. 헐렁해진 나의 자제력 드라이버 조여보고자 말이다.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할 수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초를 녹여서 촛불을 피우듯 슬픔을 녹여서 감동의 작품으로 밝혀야 하나?^^ 살다 보면 별별일이 많다. 그러나 그 많은 일들 중 '자유'가 줄어드는 건 '슬프다!'는 단순한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걸 위해서는 참아야 할 건 참아야 한다. 커피 하나 참아내지 못하는 내가 유죄다. 계절은 왜 이리 커피를 부르는지?! 안된다고 하면 왜 이리 더 하고 싶은지? 애초에 모르고 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는 맛, 아는 향' 그것이 문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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