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글꼴디자인공모전(2023)
학교 타이포그래피 수업에서 한글 서체를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이를 다듬어, 제31회 한글글꼴디자인공모전에서 참가했고, 운이 좋게도 수상까지 할 수 있었다. 벌써 2년 전 일이지만 첫 디자인 공모전 참가였던지라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서체를 개발하고 공모전을 준비하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해보려 한다.
타이포그래피 수업에서 한글 기본구조와 틀을 기반으로 새로운 표정을 가지는 제목용 글자꼴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형태적 영감은 로마자에서 얻되, 그대로 한글꼴에 적용하기보다는 전체적인 감성이 한글에 어우러질 수 있도록 새로운 형태를 모색해야 했다. 나는 'P222 ARTS AND CRAFTS'라는 폰트에서 영감을 받았다. 아르데코, 아르누보 양식에 영향을 준 미술공예운동의 장식성을 보여주는 서체이다. 좌우대칭, 중앙정렬을 특징으로 하는 이미지를 그려두고 시작했다.
로마자 폰트의 형태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그래도 한글 서체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보니 초반에는 우리나라의 전통을 끌고 오거나 연결고리가 있어야 할 것 같은 집착이 있었다. 그때 교수님께서 이렇게 피드백해 주셨다. 알폰스 무하 같은 공예운동 계열 디자이너들이 우리나라에서 전시할 때, 브로슈어나 포스터에 쓸 수 있는 한글 서체를 만든다고 생각해 보라고. 그렇게 생각을 단순하게 바꾸니 진행이 수월해졌다.
모눈종이에 스케치를 하며 닿자(자음)와 홀자(모음)의 형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보다시피 나는 정원과 수직 수평이 교차하는 지점들을 통해 닿자와 홀자를 뽑아냈다. 기하학적이지만 곡석 덕분에 식물을 연상시키는 유기적인 느낌을 동시에 준다. 스케치를 통해 대략적인 형태가 잡히면 일러스트에서 디지털 작업을 시작한다.
닿자와 홀자가 완성되면 이들의 결합 구조를 탐구해 본다. 한글은 모아쓰기 글자이므로 '닿자+홀자' 또는 '닿자+홀자+닿자'로 결합된다. 같은 'ㄱ'이라도 '가', '고', '각' 등 조합방식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 네모틀로 할지, 탈네모틀로 할지 등 실험해 보며 원하는 인상의 글자를 만들기 위한 시스템을 찾는다.
새로운 글자체의 창작 프로세스와 정보를 전달하는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A2 사이즈의 양면 포스터를 제작하여 한 면에는 서체의 컨셉, 특징 등의 정보를 정리하고 다른 한 면에는 견본 문장을 적는다. 여기까지가 타이포그래피 수업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의 과정이었다.
학교 수업에서 만든 글꼴을 다듬어 공모전에 참가했다. 우선 덜어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가독성이 떨어지거나 형태가 들쑥날쑥해지는 점을 보완했다. 그리고 공모전에서 제시한 견본 문장에 맞춰 글자를 만들어 정렬했다.
인쇄소에 가기 전, 타일링을 통해 실물 사이즈와 전체적인 상태를 확인한다. 타일링은 A4나 A3처럼 작은 용지에 조각조각 인쇄해 이어 붙이는 것이다. 막상 뽑아놓고 보면 작은 모니터에서 볼 때와 차이가 클 때가 많다. 문제가 없는 걸 확인하고 인쇄소로 향했다. 충무로에 위치한 프리맥을 이용했다.
A1 사이즈 폼보드에 인쇄해야 했는데 가격이 좀 나간다. 3만 원이 넘었던 것 같다. 참고로 폼보드에 직접 인쇄를 하는 게 아니라 인화지에 인쇄를 하고 폼보드에 붙이는 거라고 하셨다. 직원분께서 알아서 잘 작업해 주실 거다.
A1은 생각보다 큰 사이즈다. 저거 들고 지하철 타고 가느라 애를 먹었다. 혹여 어디 부러질라 조심조심. 세종대왕기념사업사무국에 직접 제출하러 갔는데 길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이리저리 돌아 혼례장이 있는 쪽으로 갔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혼례장 건물 2층인가 3층에 사무국이 있다. 그곳에 제출하면 된다. 나처럼 폼보드를 들고 길을 못 찾아 기웃거리는 사람이 있었다. 묘한 동지애가 느껴졌다.
와우! 버금상을 받았다. 솔직히 자신이 없어서 참가할지 말지 고민했었는데 잘한 일이었다. 뭐든 일단 도전하고 보는 게 낫다. 수상 작품들은 일정 기간 동안 건물 1층에 전시된다. 다양한 한글꼴이 모여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내가 디자인 공모전에서 상을 타다니, 디자이너로서 의미있는 발걸음을 내딛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