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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모 May 14. 2024

즐거운 계곡

8살 나의 일기

1997년 7월 20일 일요일

날씨: 해 쨍쨍(해에 표정이 그려져 있는 걸로 보아 무척 더웠나 봄?)

일어난 시각: 5시 15분

잠자는 시각: 9시


우리 가족은 바람을 쐬러 나갔다.

우리는 아름다운 수락산 계곡어서 놀았다.

처음엔 물속에서 걸어다니기가 두려웠지만 계속 해 보니까 잘 되었다.

난 혼자 놀기가 재미없어서 돌멩이를 물속에 '퐁당퐁당' 던지며 놀았다.

해가 지자 집으로 돌아갔다.



어른이 된 나의 소회


주말이 되어 엄마아빠는 날 데리고 수락산 계곡에 다녀왔던 모양이다.

당시 엄마아빠에게 있었던 비극에 비추어봤을 때 계곡에서 돌을 던지며 노는 나를 바라보았던 그 시간은

상처를 달래주는 시간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 일기 속에 드러난 나의 모습들 중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갖고 있는 면들이 엿보인다.

- 엄마가 다 그려준 듯한 그림 : 하기 싫거나 어려운 것에 도전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보인다. 그림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영역인데 당시의 8살짜리 나로서는 도무지 [계곡에 가서 놀고 있는 우리 가족]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머릿속에 감도 안 왔을 거다. 그럼에도 도전! 같은 건 못하는 나약한 mz세대 어린이,,,,

우리 엄마도 이젠 어린이가 그린 척조차 하지 않고 세심히 밑그림까지 그렸다 ㅋㅋㅋ


- 처음엔 ~하기가 두려웠지만 계속 해 보니까 잘 되었다. : 이거 참 나를 잘 설명하는 문장이다. 

처음 접하는 것에 대해 자주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데 피하지 못한다면 일단 해보는데 무서워서 위축돼서 한다. 근데 막상 하다보면 '그렇게까지 쫄 건 없었구나?'를 깨닫게 된다.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도 수업이 참 어렵고 두렵고 그랬다. 하지만 7년간의 교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나올 때 나의 고백은 '다른 건 몰라도 학생들과의 수업이 참 그리울 거 같다.'였다.

참 명언이다. 기억해야겠다. 

"두려웠지만 계속 해 보니까 잘 되었다." - (나, 8세)


- 혼자 놀기가 재미없어서 : MBTI는 상관없이 난 혼자 노는 걸 별로 즐겨하진 않는다. 혼자 여행, 혼밥, 혼술도 별로 안 좋아한다. 집에서 혼자 핸드폰 보는 정도는 하지만 집안일조차도 누군가가 있어야 의욕이 나는 편이다. 사람들이 많아야 좋은 건 아니지만 곁에 늘 한 명 정돈 같이 붙어있어야 하는 여중생같은 면이 아직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계곡에 놀러갔는데 엄마아빤 바위에 앉아만 있고 같이 놀 또래가 없었던 나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그외에도 글에 감정이 별로 안 실려있다는 점이나 문장부호 쓰기를 좋아한다는 점 정도가 비슷하다.

새벽 5시 15분에 일어난 건 정말 지금과 다른 점인데, 어떻게 저렇게 일찍 일어났을까?

계곡에 놀러가는 날이라 들떠서 그랬을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어린이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헌나라의 어른으로 무럭무럭 자랐다.

 


글모 선생님의 코멘트

엄마아빠랑 계곡에 갔었구나~ 

물이 좀 깊었나보네? 두려워도 한 번 해보면 잘 된다는 걸 알게 돼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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