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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모 May 16. 2024

산림 전시관

8살 나의 일기

1997년 7월 28일 월요일

일어난 시각: 5시 30분

잠자는 시각: 9시


아빠의 휴가로 몽산포 해수욕장에 갔다.

해수욕장에 간 첫날 우린 '산림 전시관'에 갔다.

할머니께서 옛날에 있었던 나무로 만든 물건들을 하나하나 소개해주시면서 즐거워하셨다.



어른이 된 나의 소회


여기서 나오는 할머니는 아빠의 할머니, 즉 내게는 증조할머니시다. 

할머니는 1910년대생으로 당시에도 아마 80대셨을 것이다. 

평소에는 본인의 외동아들인 친할아버지댁에 사셨던 증조할머니는 가끔씩 손자의 집, 우리집에 오셔서 달간 지내고 당시 병원에 있어야 했던 엄마를 대신해 나를 돌봐주셨다.

그래서 나는 증조할머니와 가까운 사이였다. 같이 살고 함께 여행도 가는 가족이었으니까. 

할머니에게도 내가 다른 사촌들보다 더 예쁜 증손녀였으리라고,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 기억 속 할머니는 언제나 심심해보이셨다.

물론 집안 구석구석 걸레질도 꼼꼼히 하시고, 먹는 손녀를 위해 밥에 물을 말아 김에 싸먹이고

열심히 집안일을 도맡아 하셨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에서 80대 할머니가 겪었을 외로움은 

어른들의 사정을 모르는 내가 봐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짙었던 것 같다.


그런 할머니를 위해 나는 내가 당시 좋아하던 전래동화 시리즈 책을 가져와 읽어드렸다.

한글을 읽지 못하시는 할머니는 누워서 증손녀가 들려주는 전래동화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들으셨다.

"호랑이가 말했습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어이구 호래이가?" 


증조할머니가 즐거워하셨던 모습은 내 머릿속에는 전래동화를 읽어드렸던 그 순간뿐이었는데,

이렇게 일기 속에도 새로운 모습이 남아있다니 새롭고 기쁘다.

일제강점기도, 광복도, 한국 전쟁도, 급변하는 사회 발전도, 혁명도 모두 겪으셨던 증조할머니께서

한창 아이 키우며 살림하실 때 쓰셨던 물건들을 '산림 전시관'이라는 박물관에서 오랜만에 보시니

감회가 남다르셨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증조할머니께 여쭤봤어야 할 것들이 더 많은데, 미처 물어보지 못한 것이 많아 아쉽다.

할머니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할머니는 어떻게 결혼했는지,

남편이 스무살에 죽고 어떻게 사셨는지,

중간중간 힘이 들 때 어떻게 버티셨는지,

살아오시면서 가장 기쁠 땐 언제셨는지,

무엇이 가장 위로가 되셨는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할머니는 한글도 못 읽고 쓰는 말도 옛날 말이라 소통이 잘 안 될 때도 있었지만

분명 할머니로서 손녀에게 가르쳐주고픈 것들이 많으셨으리라.


90년대생 증손녀는 10년대생 증조할머니가 아직도 보고싶고 궁금하다. 

그래도 할머니의 모습을 일기에 남겨준 내가 참 고맙다.



글모 선생님의 코멘트


가족들과 여행을 다녀왔구나!

할머니께 전시관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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